어둠이 깔린 음산한 외진 여관에 굳은 얼굴을 한 여자가 들어선다. 급하게 숙박장부에 사인하고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샤워실로 향한다. 샤워기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여자의 벗은 몸을 때린다. 짧은 머리칼과 광대뼈가 도드라진 뚜렷한 이목구비, 탄력있는 등과 목덜미에 흐르는 소나기 같은 물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을 강조한다.
문밖 열쇠구멍으로 그런 그녀를 누군가 들여다본다. 숱많은 긴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면서 크게 떠진 눈동자도 격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유명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의 샤워실 살해 장면. 적당히 선정적인 폭력성과 성애적인 스릴러로 버무린 ‘사이코’는 대중의 관음증적 상상력과 욕망이 영합한 매혹적인 영화다.
#관음증은 억압된 욕망의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
▲ 영화 '나쁜남자' |
문명사회는 그 사회의 지속적인 존립을 위해 제도적으로 온갖 다양한 원초적 욕망들을 제어했다. 그러나 누르면 누를수록 튕겨져 나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특히 성(性)에 대한 욕망은 억압되고 은폐될수록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해 음성적으로 분출한다. 그런 이유로 포르노의 범람은 억압된 욕망의 저항의 형태로 나타난 자연스런 관음증적 반응일 따름이다.
오래전, 포르노 비디오를 본 에피소드를 얘기해 보겠다. 지금이야 인터넷, SNS로 맘껏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엔 비디오테이프가 전부였다. 신문사에 입사하면서 혼자 자취생활을 하던 중 옆방에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들어왔다. 나도, 그 아이도 객지생활 하는 처지라 곧잘 같이 밥도 해먹고 수다도 떠는 사이가 됐다.
하루는 그 친구가 비디오 하나를 보여주며 “언니, 내가 재미난 거 보여줄게” 하는 거였다. 이른바 포르노비디오였다. 러닝타임 두시간짜리로 보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적나라하고 디테일한 남녀의 섹스장면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신세계(?)였다. 배우들의 과도한 신음소리가 주인집 할머니 귀에 들어갈까봐 볼륨을 줄이고 우리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전날밤의 ‘무용담’을 부서 여자선후배들에게 신나게 자랑했다. 평소 점잖고 교양과 지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당장 낼 갖고 오라고 성화가 빗발쳤다. 내것인 양 그 비디오를 선배들부터 쫘악 돌렸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는, 내숭쟁이 동료가 빌려달란 말을 못하는 거다. 다 돌려보고 나서 넌지시 물었다. “빌려줄까?” “응.” 대답하는 데 0.5초도 안 걸렸다.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성만큼 대중에게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는 없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성은 금기의 대상이다. 성적인 표현을 억압하는 분위기는 곧 그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시킨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은 게 인간의 속성 아닌가. 거기다 성과 권력의 상관관계는 대중의 추악한 흥미를 유발한다. 신정아 사건은 우리 사회가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야수같은 이빨을 드러내는 포악성을 보여줬다. 신씨가 친분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는가라는 본질은 제쳐두고 신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성적인 문제에만 파고드는 데 혈안이 됐었다. 언론은 한술 더 떠 누드사진을 게재해 대중의 관음증을 부채질했다.
#엿보는 쾌감이 지나치면 병적인 문제가 된다
타인의 나체를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타인의 고통을 보려는 욕망도 격렬하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전쟁의 참화가 보여주는 병적인 잔인함은 보는 사람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만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TV, 컴퓨터, 휴대폰 등의 작은 화면 앞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벌어진 재난의 이미지를 보면서 ‘즐긴다’.
구경꾼들에게는 특정한 사람들의 고통이 흥미롭기만 하는 악마적인 본능을 갖고 있다. 전세계인은 9.11테러와 미국의 이라크침공 때 일종의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경험을 했다. 집안에 편안히 앉아 저 멀리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고통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받으며 게임을 즐기듯 했다. 지금도 우리는 아프리카·시리아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수장되는 걸 화면으로 보며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쳐다보고 싶어한다.
관음증을 뜻하는 ‘피핑 탐(Peeping Tom)’은 ‘엿보는 탐’이란 뜻이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탐’들의 관음증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온라인 상에는 출처불명의 연예인들의 동영상과 워터 파크 몰카 등 무차별적인 몰래 카메라가 판을 치고 있다. 타인의 사생활을 은밀히 엿보는 것은 짜릿한 즐거움이다. 허나 그것이 지나치면 사회병리현상이 된다.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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