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배재대 총장 |
우리에게 추리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는 김성종은 1987년 '어느 창녀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집을 출판했다. 단편집의 제목과 같은 단편소설 '어느 창녀의 죽음'은 1974년 쓰인 것으로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남북이산가족의 서글픈 내용을 담고 있다.
6·25전쟁으로 북에서 서울까지 피란 온 '춘이'는 안타깝게도 아버지와 오빠와 헤어져 창녀가 된다. 어느 날 춘이는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한다는 손님을 받았다. 자신을 백인탄이라고 소개한 이 손님은 춘이보다 9살이나 많았다. 백인탄 역시 아버지와 누이동생과 함께 서울로 피란 왔지만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과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 손님 때문에 춘이는 한 편으로는 행운을 다른 한 편으로는 불행을 동시에 접하게 된다. 행운이란 자신의 과거를 이 손님으로부터 알 수 있었다는 것이고, 불행은 이 손님이 그렇게 찾고 싶었던 오빠라는 사실이다. 결국 춘이는 오빠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윤리적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비오는 차가운 겨울 새벽 수면제를 먹고 길거리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2008년 3월 독일 헌법재판소에서는 근친혼금지법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따라 '라이프치히 근친혼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사건의 부부는 더 이상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부모의 사정으로 4살 때 입양된 슈튜빙은 성인이 되어 어렵게 생모를 찾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고, 슈튜빙은 여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근친혼은 엄연히 범죄다. 슈튜빙은 2005년 근친혼 금지조항을 어겼다며 형법상 범죄자로 기소되어 3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부인도 같은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자녀 양육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호관찰이 선고되었다. 슈튜빙은 2년 정도 수감생활을 하다가 헌법재판소에 근친혼은 위헌이 아니냐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독일 헌재는 근친혼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자식들에게도 좋지 않다며 근친혼을 금지하는 독일의 현행법은 헌법에 합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라이프치히 근친혼 사건'은 모두 분단국이 갖고 있는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춘이는 이 문제를 죽음으로 해결했고, 슈튜빙은 근친혼을 인정해 달라며 법에 호소했다. 접근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분단국이 갖는 아픔의 차이는 없다.
지난달부터 남북 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마무리되면서 그 동안 잠시 잊혀 있었던, 그렇지만 계속 논의되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상봉 인원이 정해지고 합의서가 오고가고 상봉장소가 정해지고 바쁘고도 신속하게 실무자들이 움직여 만날 날만 남았다. 상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사 확인 작업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최고령자는 103세를 비롯하여 90세 이상이 33%이지만 80세 이상으로 내려가면 무려 73%로 알려졌다. 그리고 북쪽 최고령자는 97세이지만 90세 이상은 더 이상 없으며, 80세 이상이 무려 96%이다. 뿐만 아니라 찾는 가족도 부부나 부자관계가 82%로 밝혀졌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산가족의 정례화를 주장해 왔다. 특히 이번 생사확인 작업을 통해 정례화가 왜 필요하진 확실해졌다. 우리나라의 김성종은 1970년대 이산가족의 문제를 소설로 제기했고, 독일의 슈튜빙은 여전히 이 문제로 가슴아파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이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민간차원이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곧 명절이다. 이번 이산가족상봉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이를 계기로 정기적인 만남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영호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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