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문 대전유교문화진흥원장 |
필자는 작심하고 1박2일 일정으로 영남유학의 본향인 안동지역으로 유교문화 유적을 답사하러 길을 나섰다. 차창을 스치는 바람과 싱그러운 신록을 뒤로하고 안동시에 도달하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버스광고판이 나의 시선을 자극하였다. 놀라운 것은 각급기관의 현관과 시내전체에 버스광고와 동일한 표어가 도배될 정도였다. 안동시 문화정책의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만감이 교차하였다.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유교문화랜드도 방문하였다. 잘 정돈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관광 상품으로, 그리고 유교문화를 세계화로 이끌어가는 10년이 앞선 노력이 눈에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문화유적을 매개체로 설립한 '한국국학진흥원'은 본관건물 4036평, 유교문화박물관 809평, 장판각 200여평, 강학·연수를 위한 숙박시설 및 부대시설 등 8800여평 규모로 건립되었다. 유교관련 민간소장 자료의 수집· 보관·전시, 유교책판 조사연구 및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 유학 자료의 정리·활용·강학, 그리고 전통문화교육, 특별히 영남유학의 조종인 퇴게 이황과 그의 문인들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국학진흥원에서 기호유학은 보이지 않았다. 기호유학은 영남유학과 더불어 조선조 유학의 양대산맥이었지 않은가? '필자는 과연 한국정신문화의 수도가 안동일까?' 몇 번이나 되뇌어 본다.
영남유학과 더불어 기호유학의 조종이신 율곡 이이의 문인들중 김장생 조헌 서성 황신 정화 등이 뛰어났다.특히 사계의 문하에 학운이 융성하여 그의 아들 김집에게 계승되었다. 사계와 신독제 부자에게서 학을 받은 이로는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초려 이유태 유계 등이 대표적인 학자다. 율문3세인 이들로부터 기호학파가 형성되었으며 기호학파는 우암의 기라성같은 문인들이 다음 세대를 주도하였다. 우암은 회덕인이라 하였다. 대전 회덕은 기호 유학의 성지다. 우암이 지은 향안록과 청금록, 그리고 동춘당이 글을 쓴 유물이 회덕향교에 보존되어 있으며, 동춘당, 남간정사, 쌍청당, 도산서원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영남유학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대전유교문화 진흥원은 2년여 동안 회덕향교부지 2만2000평에 가칭 '한국선비정신문화원 건립을 기획하였다. 즉 정신문화원 본관건물 태학의 집, 유교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유교문화박물관, 민간소장 책판을 보존하는 장판각, 선비문화를 스토리텔링화하여 테마파크형 체험전시를 하는 선비문화랜드, 대전의 뿌리인 회덕관아복원사업 등을 설계하고 관계당국에 제안하였다. 이 사업은 시민에게 정신문화의 가치를 복원시켜줌으로써 충청도 양반의 본향으로서 자존심 회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첨단과학과 전통문화가 공존하는 명품도시 대전에 '한국선비정신문화원'이 건립되면 문화유적을 연계한 관광벨트화로 관광의 질이 높아지고, 창조성에 기반한 문화융성의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더욱이 민족정신을 계승하는 정신문화 사업은 백년을 뛰어넘어 우리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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