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공신에게는 상을, 능신에게는 자리를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여론광장] 공신에게는 상을, 능신에게는 자리를

  • 승인 2015-09-15 14:05
  • 신문게재 2015-09-16 19면
  •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일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 산하 한 기관의 상근 임원이 새로 임명됐다. 한때는 바로 그 기관에 보조금을 신청하고 또 받은 다음 집행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을 담당하던, 이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 민간단체의 사무 책임자였다. 그에 대하여는 '○○협회에서 사무를 총괄했던 경력에 비추어 이 자리도 능히 해낼 분'이라는 취지의 해당 기관장의 추천사가 이사회 회의록에 남아 있다. 본업인 교수직은 당연히 휴직을 하였을 터. 물론 이 두 사람은 같은 분야에서 오래도록 뜻을 함께해 온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안팎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곧 이런저런 잡음이 나왔다. 기관장이 그에게 거의 모든 일을 맡기다시피 하였기에 이는 점점 심해졌다. 의욕만 앞세운 그의 업무 처리 방식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억지춘향이 되었으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쉬쉬할 수밖에. 위계적 조직사회란 대개 그런 것. 노동조합위원장도 무언가를 바로잡으려 하기보다는 리더십의 약점을 잡아 거래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지경. 비주류로 지내온 오랜 세월의 한을 풀기만 하려는 듯 뚜렷한 비전도 전략도 없이 좌충우돌 뒤죽박죽이었다. 한마디로 선무당이었던 것!

공정하기로 정평이 난 그 기관의 공식적인 신규 충원 절차 바로 밖에서 그의 후배들이 불려왔다. 많은 비정규직 자리가 그렇게 채워졌다. 그의 임기 2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으며, 그중 고유목적사업의 시스템과 내용이 심각하게 왜곡됐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쓰디쓴 단골 안줏거리다. 기관 자체 프로그램의 주연은 대부분 그의 전공 장르나 NGO·NPO의 '동지(同志)'들이었으며, 보조금 심의위원회도 흔히 그렇게 꾸려졌다. 이유는 늘 그 기관이 지금까지 잘못 운영돼 왔었다는 것. 한마디로 아마추어 리더십이었다. 그나마 정의롭다고도 할 수 없는!

이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흔한 사례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며, 그래서 뜻을 함께하면서 고생하는 것 아니냐는 따위의 친절한 설명까지 달면서. 이것이 굳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앞 사례의 그가 학교나 NGOㆍNPO, 즉 자신이 전공하고 가르치고 주장하는 분야에서는 몰라도 공공조직의 행정과 경영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데다 공공의 행정과 경영이 기본 가치로 떠받드는 정(正)과 의(義), 공평과 합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정치 바람을 타고 공공조직의 장이 된 상당수 교수들이 잠깐의 '외도(外道)'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 기관의 미션과 동떨어진 비전문가 또는 겉만 비슷한 사이비였거나, 공공 행정·경영의 가나다를 모르거나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적격을 알 리 없는 이들은 흔히 조직의 '일'을 자랑하는 대신 자신의 '자리'를 자랑한다. 기관의 미션과 별무관한 선후배 동문이나 동료들을 강의, 발제, 토론, 회의에 마구 불러들인다. 실무자들을 제쳐두고 명단을 짜거나 심지어 연락 전화까지 직접 한다. 앞 사례의 그가 그랬다.

이제 '전문가란 누구인가'라는 닳고 닳은 물음에 답할 차례다. 참 쉽지 않은 문제지만, 프로 스포츠 감독을 생각하면 간단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운동장의 흙바람을 먹으며 자란 선수 출신들이다. 누구든 경기장마다 찾아가 응원석에 앉을 수는 있어도 선수 출신이 아닌 이가 감독석에 앉는 일은 없다. 눈 먼 구단주라면 혹 모르겠으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구단주는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은 다 전문가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의 영역에서 활동할 때만 맞는 말이다. 송충이는 소나무에 있을 때만 전문가다. 갈잎이 아닌 솔잎을 먹는 송충이라야 전문가다.

예부터 공신(功臣)에게는 상을 주고 능신(能臣)에게는 자리를 주라 했다. 공과 상은 정치의 영역이요, 능력과 자리는 전문성의 영역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과 능력을, 또 상과 자리를 잘 분간하지 못한다. 슬픈 노릇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2.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3.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1. [사설] 아산만 순환철도, ‘베이밸리 메가시티’ 청신호 켜졌다
  2. [사설] 충남대 '글로컬대 도전 전략' 치밀해야
  3.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4. 대전중부서, 자율방범연합대 범죄예방 한마음 전진대회 개최
  5.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중부권 최대 규모 크리스마스 연출

헤드라인 뉴스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행정통합, 넘어야 할 과제 산적…주민 동의와 정부 지원 이끌어내야
행정통합, 넘어야 할 과제 산적…주민 동의와 정부 지원 이끌어내야

대전과 충남이 21일 행정통합을 위한 첫발은 내딛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는 지적이다. 대전과 충남보다 앞서 행정통합을 위해 움직임을 보인 대구와 경북이 경우 일부 지역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지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대전과 충남이 행정통합을 위한 충분한 숙의 기간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1989년 대전직할시 승격 이후 35년 동안 분리됐지만, 이번 행정통..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