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안팎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곧 이런저런 잡음이 나왔다. 기관장이 그에게 거의 모든 일을 맡기다시피 하였기에 이는 점점 심해졌다. 의욕만 앞세운 그의 업무 처리 방식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억지춘향이 되었으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쉬쉬할 수밖에. 위계적 조직사회란 대개 그런 것. 노동조합위원장도 무언가를 바로잡으려 하기보다는 리더십의 약점을 잡아 거래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지경. 비주류로 지내온 오랜 세월의 한을 풀기만 하려는 듯 뚜렷한 비전도 전략도 없이 좌충우돌 뒤죽박죽이었다. 한마디로 선무당이었던 것!
공정하기로 정평이 난 그 기관의 공식적인 신규 충원 절차 바로 밖에서 그의 후배들이 불려왔다. 많은 비정규직 자리가 그렇게 채워졌다. 그의 임기 2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으며, 그중 고유목적사업의 시스템과 내용이 심각하게 왜곡됐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쓰디쓴 단골 안줏거리다. 기관 자체 프로그램의 주연은 대부분 그의 전공 장르나 NGO·NPO의 '동지(同志)'들이었으며, 보조금 심의위원회도 흔히 그렇게 꾸려졌다. 이유는 늘 그 기관이 지금까지 잘못 운영돼 왔었다는 것. 한마디로 아마추어 리더십이었다. 그나마 정의롭다고도 할 수 없는!
이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흔한 사례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며, 그래서 뜻을 함께하면서 고생하는 것 아니냐는 따위의 친절한 설명까지 달면서. 이것이 굳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앞 사례의 그가 학교나 NGOㆍNPO, 즉 자신이 전공하고 가르치고 주장하는 분야에서는 몰라도 공공조직의 행정과 경영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데다 공공의 행정과 경영이 기본 가치로 떠받드는 정(正)과 의(義), 공평과 합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정치 바람을 타고 공공조직의 장이 된 상당수 교수들이 잠깐의 '외도(外道)'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 기관의 미션과 동떨어진 비전문가 또는 겉만 비슷한 사이비였거나, 공공 행정·경영의 가나다를 모르거나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적격을 알 리 없는 이들은 흔히 조직의 '일'을 자랑하는 대신 자신의 '자리'를 자랑한다. 기관의 미션과 별무관한 선후배 동문이나 동료들을 강의, 발제, 토론, 회의에 마구 불러들인다. 실무자들을 제쳐두고 명단을 짜거나 심지어 연락 전화까지 직접 한다. 앞 사례의 그가 그랬다.
이제 '전문가란 누구인가'라는 닳고 닳은 물음에 답할 차례다. 참 쉽지 않은 문제지만, 프로 스포츠 감독을 생각하면 간단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운동장의 흙바람을 먹으며 자란 선수 출신들이다. 누구든 경기장마다 찾아가 응원석에 앉을 수는 있어도 선수 출신이 아닌 이가 감독석에 앉는 일은 없다. 눈 먼 구단주라면 혹 모르겠으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구단주는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은 다 전문가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의 영역에서 활동할 때만 맞는 말이다. 송충이는 소나무에 있을 때만 전문가다. 갈잎이 아닌 솔잎을 먹는 송충이라야 전문가다.
예부터 공신(功臣)에게는 상을 주고 능신(能臣)에게는 자리를 주라 했다. 공과 상은 정치의 영역이요, 능력과 자리는 전문성의 영역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과 능력을, 또 상과 자리를 잘 분간하지 못한다. 슬픈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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