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진숙 대전중리초 교감 |
늘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면 이내 마음이 놓이는 음성이 들리는데도 가끔씩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음성을 듣고 난 후부터는 전화 받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어려운 업무가 되어 버렸다.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가 기승을 부리던 6월은 너나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집에서 꼼짝도 못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시간 나는 대로 손 씻으러 수돗가로 달려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교무실 전화기는 쉬지 않고 울어댔고,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시는 학부모님들의 항의는 빗발쳤다.
“여보세요, 거기 교무실이죠?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왜 휴교를 안 합니까? 아이들 목숨가지고 장난칩니까?”
“아버님, 저희들도 매일 수시로 학생들의 건강 체크도 하고, 교사들이 가장 일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휴교를 하면 되잖아요.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지실 겁니까?”
“휴교는 학교장이 쉽게 결정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본 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협의회를 거쳐 휴교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금이 그 꼭 필요한 시기니까 빨리 휴교하십시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강한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시는 학부모님을 대할 때는 저절로 숨고 싶어진다.
맞벌이인 가정에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고 제발 휴교만은 피해달라고 상반된 의견으로 전화가 불통이 나고, 아이를 돌봐주실 수 있는 가정에서는 부모님께서 아이와 함께하시길 원하신다. 휴교가 아이들의 안전에 최선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휴교가 결정되겠지만 기약도 없는 메르스로 인해 휴교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되어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누군가의 질책을 받으며 인내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부턴가 학교로 걸려오는 전화로 인해 기분 좋은 순간보다 힘든 순간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학교에 전화하셔서 화부터 내시는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면서 교육에 임해야하는 교사들은 오늘도 아프기만 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던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가끔씩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떠오른다. 남이야 기분이 나쁘거나 말거나 내 기분대로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소리 지르고, 화가 나면 거친 욕설도 거르지 않고 퍼붓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하는데도 자신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 왠지 불쑥 강마에가 떠오른다.
우리는 인격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사회성이 결여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도 아닌데 왜 남들이 하는 일에 화부터 나는 걸까?
이 세상에 내 기분과 내 자존심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나로 인해 남이 아파하지 않도록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조금만 더 예의를 지켜서 대해준다면 선생님은 더 예의를 갖추어 가르쳐주시지 않을까?
“선생님, 저희 아이는 칭찬해주면 더 신나서 뭐든지 잘하는 아이랍니다. 칭찬 많이 해주세요.”
모든 아이들은 칭찬을 먹으며 쑥쑥 자란다. 칭찬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고 칭찬을 싫어하는 선생님도 없다. 선생님도 아이처럼 칭찬을 먹으며 쑥쑥 성장하고, 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칭찬으로 보답한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오늘은 나부터 돌아봐야겠다.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음성만으로도 행복을 전하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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