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유기 속에 한 차례 사망자가 됐던 이 노인은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 또 다른 학대를 겪으며 지난 22일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가족에게 학대를 받던 노인이 발견되고 사회에 최소한의 보호를 받는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신고 없이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노인학대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2일 대전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이성준(가명)씨가 지켜보는 가족 없이 조용히 숨을 거뒀다. 향년 79세였고, 노인요양병원에 몸을 의탁한 지 1년을 조금 지난 때다.
그는 지난해 4월 대전역 인근에서 갈 곳 없이 배회하던 중 지나던 행인의 손에 이끌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안내됐다.
제때 치료받지 못했는 지 오른쪽 눈에 백내장 현상이 상당히 진행됐고, 한쪽 발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했으며 집이 어디이고 가족은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날 이씨는 노숙인지원센터 직원과 함께 동부경찰서를 찾아가 지문조회를 통해 2009년 법원에서 실종 선고를 받아 자신이 행정상 사망자로 처리됐음을 알게 됐다.
앞서 그는 2003년 9월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가족에 의해 가출인 신고가 접수됐고, 가정법원에서 실종선고까지이뤄져 2009년부터는 행정적·법률적으로 사망자였다.
11년 전 실종신고 되고 5년 전 사망처리까지 이뤄진 노인을 찾았으니 이제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노인학대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동구청과 노숙인지원센터가 각각 이씨의 가족에게 아버지의 생존 사실을 알렸으나 이들 가족은 아버지를 되찾거나 부양하기를 거부했다.
그뿐 아니라 생존한 아버지가 행정·법률적 사망자 처리된 것을 취소해 주민등록을 되살려야 한다는 구청의 요구마저 가족들은 거부했다.
당시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도 이씨의 한 아들은 “(사망선고를) 되돌릴 생각이 없다”며 “가족에 큰 상처가 있었고, 가정사에 의한 일이다”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씨는 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의 도움으로 가정법원에서 지난해 11월 실종선고를 취소한다는 판결을 받았고, 그해 12월 1일 대전시민이 됐다.
그런 그가 학대를 벗어난 안식처였던 요양병원에서 지난 22일 오후 5시께 사망했고, 그의 가족은 24일에서야 아버지의 유해를 받아갔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백내장에 기억상실 등의 중병을 앓는 아버지의 생존을 파악하고도 부양을 거부하고 사망 처리도 취소하지 않겠다는 가족 반응이 충격이었다”며 “분명한 노인학대였지만, 당사자가 가족 고발을 판단할 정신적 여력이 되지 않아 신고조차 못했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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