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고위급 회담이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으로 타결되며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25일 대한적십자사 대전·세종·충남지사에 마련된 이산가족찾기 접수처에서 직원이 문의전화를 받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
이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려 기다리는 실향민이 전국적으로 6만6200여명에 달하고, 충청권에서 5600여명의 실향민이 평균나이 80세를 넘어서고 있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대한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된다.
평안북도 정주군 고안면이 고향인 선우훈(83·대전 신탄진·대덕지구 이북도민회장)씨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추진 소식에 실낱같은 희망을 다시금 품게 됐다.
이북 고향에 어머니와 5살 터울의 여동생을 남겨 두고 해방 이듬해 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이끌려 13살 나이에 북한을 떠나 월남했다.
남한에 먼저 자리 잡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금방 데리고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헤어짐은 60년간 다시는 만나지 못한 생이별이 되고 말았다.
봄과 겨울이 수십 번 반복되는 세월 동안 어머니가 이북에 생존해 계시리라 기대할 순 없더라도, 고향을 함께 뛰놀던 여동생의 손을 맞잡고 싶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는 이북에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편안하게 고향에 묻히셨는지, 동생은 가족을 잘 일구었는지, 밤새워 이야기도 하고 싶다.
선우훈씨는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1989년부터 신청서를 제출하고 상봉자 명단에 포함되기를 줄곧 기다려왔으나 아직 이북의 가족을 못 만나고 있다”며 “올해 내 유전자 시료를 적십자에서 가져갔는데, 이 몸이 죽어서라도 이북 가족과 선이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함경남도 흥남시 신상리에서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 때 월남한 최완하(87·대전 인동)씨는 이북에 있는 어머니와 누나ㆍ형ㆍ동생이 그립다. 전쟁 와중에 혈혈단신 남한에 내려와 가족 없이 보낸 65년은 외롭고 고향 풍경을 매일 같이 머릿속에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최씨는 “이북에 형제는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조카들만 남아있을 것 같은데, 하루라도 빨리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해 우리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평안북도 창선군 청산면에서 1948년 월남한 실향민 강오석(82) 씨는 이북에 가족을 두고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지 않았다. 광복 직전 결혼해 분가한 누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온 가족이 월남할 때 함께 움직이지 못해 이북에 홀로 남았고, 지금까지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중학교 교사로 퇴직한 강씨는 교과서에 이산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복받치는 감정에 복도에서 눈물을 한참 흘리고서야 교실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북에 둔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가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실향민도 이북 가족을 만나지 못해 수년 째 기다리는데 자기에게 순서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이미 작고한 형님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이북 여동생을 만나려 했지만, 결국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산가족 만남은 쉼 없이 이뤄져 보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이산가족으로 등록된 국내외 인사는 12만9698명이며, 이 중 6월 말 기준 생존자는 6만6292명(51%)이다.
생존자 중 대전 1492명, 충남 1958명, 충북 2064명, 세종 131명 등 충청권에서 실향민 5645명이 이산가족 상봉을 기다리고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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