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배재대 총장 |
알제리에서 태어나 북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는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 알제리 안나바의 옛 지명인 히포에서 주교로 생활하다 반달족의 공격을 받아 전쟁의 공포와 부상, 전염병 등으로 신음하던 난민을 돌보다가 자신도 역병에 걸려 숨지고 만다. 바로 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남긴 라틴어 저서 중에 “Confessiones”가 있다. 이 책을 번역할 때 서양권 학자들은 원어 명을 이 책의 제목으로 그대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 책을 번역할 때 제목이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라틴어 명사 '콘페시온'에는 한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참회, 찬미, 그리고 감사의 뜻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콘페시온'이 동사로 사용될 때다. 이 단어가 동사로 사용되면 목적어가 각각 다르게 된다. 즉 죄를 참회하고, 신을 친미하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단어를 사용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즉 이 단어에 관련된 주체와 객체가 분명해야만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죄를 참회하고, 신을 친미하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책이 종교국가가 아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번역될 때는 그리스도라는 주체를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자마다 어떻게 제목을 붙일까하고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붙인 제목이 어떤 학자는 “참회록”이라고 했고, 또 어떤 학자들은 “고백록”이라고 했다. 참회나 고백은 당연히 죄를 전제로 하는 단어다. 즉 그리스도라는 주체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 주체에 대한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 대해서 참회하고 고백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자들도 그 점을 인정하고 그렇게 제목을 붙였다. 이렇게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저서를 집필하면서 그리스도와 아우구스티누스, 죄와 참회 혹은 고백이라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분명히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받아드렸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전쟁에도 주체와 객체가 있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있으면 어떤 방법이든 피해를 보는 나라가 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그에 따른 응당한 피해를 보상하도록 국제법은 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년 전쟁이 끝난 날을 중심으로 승전국과 패전국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해 담화문를 발표한다. 올해는 전쟁이 끝난 지 70주년이기 때문에 각국의 관심도 높았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패전국 일본의 담화문이 궁금했다.
2015년 8월 14일 일본 아베 총리는 국무위원들의 뜻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이미 언론에서 보도되었지만 우리나라 어떤 사람도 이 담화를 인정한다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우리는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지도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미 여러 차례 고노담화를 부정했고, 자신의 담화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과거형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베담화가 발표되기 며칠 전 하토야마 전 총리는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유관순 열사가 수감 당했던 여자 옥사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름 하여 '무릎사죄'를 하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게 맞다. 독일의 전 총리 빌리 브란트가 유대인 기념탑 앞에서 무릎사죄를 했던 것처럼 이게 맞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반성과 사죄는 객체와 주체의 관계에서 나와야 하는 정당한 행위이고 옳은 행동이다. 과거청산은 잘못을 직시하고 반성과 사죄에서 나오는 것이지 자위대를 키우고 국방비를 늘여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간 나이토 등 다섯 명의 전 일본 총리도 며칠 전 아베의 안보법안을 비판하고 입헌주의를 위반하면 총리자격 없다며 사퇴를 촉구 했다. 아베 일본 총리는 받아드릴 것은 받아드려야 하는 역사의 간단한 공식을 먼저 배우고, 번역서 제목을 정하면서도 주체와 객체의 문제로 고민한 특히 일본학자들의 깊고 넓은 생각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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