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저녁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최장섭 할아버지가 징용 당시 겪어던 참혹한 경험을 시민들에게 증언하고 있다. |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날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일해야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마음과 몸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지만 세상은 점점 그 상처에 무뎌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7시 대전시청 북문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민족공동행사 대전준비위원회'와 '평화나비 대전행동'이 공동주최한 '해방에서 통일로'에서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고된 노동을 했던 김한수(97), 최장섭(86) 할아버지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덕구 와동에 사는 김 할아버지는 1944년 당시 27살에 일본 나가사키현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창고에 판자로 층을 내고 일본식 바닥재인 다다미를 깔고 수용인원이 12명인 곳에서 84명이 엉켜 쪽잠을 잤다. 김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일본 항공모함에 쓰이는 대형 파이프 구부리는 일을 하다 왼발 엄지발가락이 부서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가장 서러웠던 건 지금 떠올려도 참기 어려웠던 배고픔이었다. “개한테도 그런 음식은 안 줍니다. 기름 짜내고 난, 썩어서 냄새나는 깻묵이나 고구마 넝쿨을 바닷물에 삶아서 먹으라고 줬습니다. 죽지 않게 먹이고 그래도 죽으면 내다 버리고, 죽지 않으면 또 일을 시켰습니다.” 그는 지독하게 배고팠던 그날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김 할아버지는 “아베 총리가 미·중국에 사과하면서 한국은 식민지여서 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정부는 그말을 듣고도 항의하지 못하고 뭐 하는 것이냐”며 정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최장섭(동구 판암동) 할아버지의 증언도 이어졌다. 일본에 끌려간 당시 17살 소년은 일본의 참혹함을 똑똑히 기억하는 듯 했다. 최근 일본의 군함도(하시마섬)가 유네스코에 지정된 것에 대한 거센 분노도 표현했다.
“일본은 전 세계인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어린 조선인 노동자와 당시 일했던 미국 포로, 중국인들까지. 모든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마치 거기 있는 시설들이 자신들의 자랑인양….” 최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1000m 해저에 갱도를 파고 막장에서 일했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던 조선인 12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두 노인의 주름진 얼굴은 당시 힘없는 나라의 국민으로 고단했던 삶을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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