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자유로운 영혼이 됐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표정 하나하나에서 그의 아름다움이 쏟아졌다. 그 주인공은 발레리나 진세현(22·사진)씨. 진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복을 입은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토슈즈'라 불리는 발레신발이 너무 신고 싶어 부모님에게 '발레를 시켜달라'고 무작정 졸랐다.
결국 토슈즈를 신은 진씨는 몸짓으로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무용이지만, 진씨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이름을 날렸다. 현재 미국 컬럼비아 클래식컬 발레단 주역으로 활동 중인 진씨는 '발레는 자기 인생의 100%'라고 한다. 그를 미국으로 출국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 만났다. <편집자 주>
▲꿈 꿨던 것 같다. 솔직히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도 있고, 짧은 시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컸으니까. 지금 다시 연습장으로, 공연장으로 돌아 가야될 것만 같다. 연습에서부터 공연까지 굉장히 재미있었다. 사실 뒤풀이 때 많이 울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공연에서 딸 역할을 한 아이가 많이 울었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울었다. 매번 돌아가야 할 때면 돌아가서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먹어지는데, 이번엔 굉장히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신난하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쳐 기분은 좋다. 떠나야한다는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은.
▲첫 공연이다.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떨리고 큰 부담이 됐다. 모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나는 첫 공연을 어떻게 펼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을 거듭할수록 마음 정리가 됐고, 더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욕심 같은 게 생겨났다. 떨긴 했어도 좋은 공연을 펼쳤다고 나름 자부한다.
-1인 2역을 맡았었는데,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클라라와 호두까기인형을 맡아 1인 2역을 연기했다. 남편인 프리츠 박사의 실험실에서 잘못된 유전자실험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쥐들이 남편과 딸인 마리를 납치한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클라라는 호두까기인형으로 변신한다. 클라라와 호두까기인형의 이미지가 다른 만큼, 연기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 호두까기인형은 괴물 쥐들과 싸워 가족을 구해야하는,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이미지에서 강한 이미지로 바로 바꿔야 한다. 연습 초기에는 호두까기인형의 강한 느낌보단 여려보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주변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다.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한 공연에서 연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마지막 공연에서 정말 강한 호두까기인형을 표현했던 것 같다. 솔직히 몸은 힘들었지만, 매번 클래식 전막 공연을 하다 창작 발레 전막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재미있게 한 것 같다.
-무용, 발레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나.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방과 후 수업에서 친구들이 발레를 배우는 모습을 봤다. 발레복 입은 친구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발레복에 보석도 많이 있고, 반짝반짝하니 예뻐서 끌렸던 것 같다. 매일매일 발레복이 입고 싶었고, 토슈즈를 신고 싶었다. 결국 나 발레 좀 시켜달라고 무작정 졸랐다. 아버지가 반대를 많이 하셨다. 무대에 서는 모습은 예쁘지만, 무대에 서기 위해 피나는 연습이 필요해 몸이 너무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제 고집이 워낙 센 탓인지 허락해주셨다. 한국무용과 발레를 방과후 수업을 통해 배우다 4학년부터 전공으로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가 그렇게 좋았나.
▲지금도 좋다. 어렸을 땐 집에서도 계속 연습했다. 가끔 발레 자세를 유지한 채 잠든 적도 있다. 친구들은 너무 예쁘게 잘하는데 나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나도 예쁘게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친구들보다 늦게 발레를 시작한 만큼, 더 노력했다. 시키는 대로 했고, 연습은 남들보다 2배 이상 했다. 지도해주셨던 김경란 선생님께서도 제 욕심을 아셨는지, 더 신경써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것 같다.
-대전예술고 1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갔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입학한 후 1~2개월 정도 있다가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김경란 선생님께서 적극 지원해 주셨다.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과 떨어져있는 것은 마음이 아팠지만,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기회라 굉장히 급하게 떠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 생활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발레가 하루 일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별히 사춘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공연이나 연습 중 다친 적은 없나.
▲당연히 있다. 다만 일일이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다쳤다고 말씀드리면 걱정하시니까. 한번은 연습 중에 넘어져 갈비뼈를 다친 적이 있다. 발도 조금 좋지 않은 상태였다. 공연을 며칠 앞둔 상황이어서 걱정이 많았다. 매일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결국 붕대를 감고 무대에 올랐는데, 공연 중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통증이 심했다. 무대에 다시 오르고 싶었지만, 결국 감독이 다시 못하게 했다. 한번이라도 했으니 만족한다. 그 공연이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줄리엣'역이었으니까.
-발레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렸을 땐 발레밖에 몰랐다. 지금은 마음껏 놀러 다니고 싶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싶다. 하고 싶은 게 진짜 많지만,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성격상 잘 안되는 것 같다. 지금도 주변 친구들에게 공부만 하고 발레만 했던 아이로 인식된 탓인지, 놀아도 맥주 조금 마시고, 계속 이야기하는 정도다. 왠지 나 때문에 건전하게 노는 것 같다. 아 참 남자친구도 만나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 한 곳이 아닌 여러 발레단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 발레는 내 삶의 전부다. 지금은 발레가 전부인 것 같다. 발레를 계속 하는 게 꿈이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정말 주역이 아니더라도 발레를 하는 이 순간의 행복을 끝까지 느끼고 싶다. 물론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이 커서 힘들겠지만, 발레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싶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아이들은 순수함이 없는 것 같다. 오로지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달리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힘든 일이 많을 텐데 걱정이다. 발레에 대한 열정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정말 발레를 사랑한다면 누구든 신경 쓰지 말고, 그 열정 하나로만 열심히 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열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을 갔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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