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그의 주장은 예술가의 창조적 역량을 강화하고 그 활동에 대한 지원을 통해 나오는 뛰어난 예술 작품을 일반 시민들이 충분히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정부는 예술의 수월성을 높임과 함께 이러한 예술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넓혀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문화정책의 가장 상식적이고도 중요한 관점이다.
1997년 보수당에 압승하고 들어선 영국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는 이전의 문화유산부를 문화매체체육부로 확대 개편한 뒤 문화정책의 목표 가치를 '예술의 수월성', '예술에 대한 접근성', '국민의 창의성'으로 설정한다.
아울러 예술 지원은 '예술의 질적 향상', '국민의 접근성 증진', '예술교육의 기회 확대', '창조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선언하는데, 이들 네 전략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예술의 개념이 시나브로 확대되고 문화와 민주주의의 이념이 더욱 공고히 결합하는 가운데에서도 영국 문화정책의 근간은 흔들림이 없다.
전통적인 장르나 양식을 넘어 예술의 개념이 확대되는 것은 시대의 마땅한 흐름이다. 특정한 소수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내재된 창의성과 창조적 역량을 인정하고 이를 계발한다는 문화민주주의(the Cultural Democracy)의 이념 또한 시대의 당연한 요구다. 이제 누구든 할 수 있게 된 것이 예술이다.
그러나 아무나 잘 할 수 없는 것 또한 여전히 예술이다. 노래방에 가면 '나도 가수'요 카메라를 들면 '나도 사진가'지만 아무나 다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쯤에서 많은 문화행정가들이 헷갈려 하니 대개의 비전문가나 정치인들은 더 말할 게 무에 있으랴.
다름 아니라 시민문화, 생활문화를 말하고자 해서다.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 미국 등 모든 나라에서 '예술의 수월성'이라는 목표 가치와 '예술의 질적 향상'이라는 전략을 문화정책 과제의 앞자리에 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뛰어난 예술을 보호함은 물론 이를 토대로 수준 높은 시민문화, 생활문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라는 목표 가치에 연계된 '국민의 접근성 증진', '예술교육의 기회 확대', '창조산업의 활성화'라는 전략은 그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 이들은 마침내 '국민의 창의성'이라는 목표 가치로 완성돼 사회 여러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다. 다만 최근에는 행복을 핵심어로 하는 문화복지의 개념이 더해졌을 뿐이다.
문화의 미학적 표현 행위나 그 성과물이 예술이며, 이들 중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등을 기초예술이라 한다. 여기서 기초란 기초학문, 기초사회, 기초과학, 기초생활 등에서처럼 사물의 바탕이다. 참여정부 때부터 언어적 공민권을 획득한 기초예술은 '그들만의 예술'로 가둬질 수 있는 지난 시대의 순수예술과 달리 언제든 '우리들의 예술'로 확장될 수 있다.
이 기초예술은 시민예술, 생활예술, 나아가 시민문화, 생활문화의 뿌리다. 그래서 '문화국가 실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공헌을 하는 존재'(예술인복지법 제3조)인 예술가와 그 창조적 활동은 우선적으로 보호 받아야 한다.
시민문화, 생활문화는 더없이 '착한 말'이다. 지역문화진흥법도 '지역의 생활문화진흥'이라는 독립 장(章)을 두고 있다. 착한 말에는 그러나, 함정이 있다. 포퓰리즘이나 무늬뿐인 구호로 변질되기 일쑤다. 기본조건이나 앞뒤 맥락을 언급하는 것조차 때로는 불온시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시민문화, 생활문화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며, 따라서 한 도시의 시민문화, 생활문화의 수준은 그 도시의 예술의 수월성에 비례한다. 시민문화, 생활문화 정책은 시민의 창의성과 행복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단, 예술 그리고 예술가 지원 정책을 전제로 한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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