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
정 시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소소한 일상을 슬며시 건드린다. 주목할 대상 중 하나는 ‘음식’과 그로 촉발된 ‘맛’ 그리고 ‘기억’이라는 심리적 작용이다. ‘통조림’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도 없는 쇠 갑옷을 입고 몇 년을 서 있거나 누워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한 줄기 빛도 받지 않는 깊고 깊은 숙면 혹은 일어날 수 없는 영면.”(세상의 거의 모든 통조림 중)
이번 시집의 또 다른 특징은 시의 ‘이야기성’이다. 야구와 축구를 두고 펼쳐지는 시편들은 일상의 파노라마를 예시한다. 우리가 이야기함으로써 일정부분 결핍과 작은 분노들을 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이 살아내는 힘 또한 이야기다.
‘7초 영웅’은 프로 데뷔 후 한 골도 넣지 못한 공필원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맞았으나 끝내 골을 넣을 기회를 잃고 지금은 15년째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은 개인화 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일상과 그것의 상업화를 대표하는 ‘편의점’에도 주목한다. “아파트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편의점이 새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컵라면 뚜껑 사이로 따뜻한 김이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벽 다섯 시 편의적이지 않지만 편의상 너는 안개다.”(편의적이지 않은 편의점 중)
일상의 단면과 욕망의 안개를 풀어헤친 정 시인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시집을 필독하길 권한다. 출판 시와에세이, 글 정덕재, 페이지 128쪽, 가격 8000원.
▲저자소개: 저자 정덕재는 충남 부여에서 자랐다. 배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남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를 마쳤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으로 ‘비데의 꿈은 분수다’가 있다. 다큐멘터리와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했으며 영상제작 기획과 스토리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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