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그러나 커피숍은 꼭 커피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 한 두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기엔 제격인 곳이 그곳이다. 상업지역이 아닌 동네 커피숍에도 사람들이 제법 모인다. 문을 닫아버리면 이웃과 완전히 차단되는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오가다 들를 수 있는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 없기 때문이리라.
사실, 남의 집 아파트를 한번이라도 방문할라치면 큰맘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왠지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될 것 같고, 가서도 몸과 맘이 편치 않다. 겉보기의 폐쇄성과는 달리, 일단 안에 들어가면 그 집의 모든 식구들에게 개방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남자들만의 얘기, 어른들만의 얘기인 경우 귓속말은 기본이다. 그것은 친구나 친척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의 거실은 아무 예고 없이 들러도 되고 오가는 데 예의 차릴 필요도 없는 옛날의 사랑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출입하는 일이 번거롭고 심지어는 카운터에 주민등록증을 맡겨야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아파트를 방문하는 것은 철옹성에 들어가는 것처럼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면 적진에 잡혀 온 포로 같은 느낌을 준다.
친지들과 집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내 집에 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말하기가 꺼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그들의 맘을 편하게 하기는커녕 크게 긴장하게 만든다. 이럴 때 동네에 좋은 커피숍이 있어 그들을 그리로 초대한다면 마다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불면증 때문에 커피를 멀리하는 사람조차도 싫어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그렇게 많은 커피숍이 생기는 모양이다.
커피숍은 학생들도 매우 좋아하는 공간인 것 같다. 어떤 학생들은 아예 노트북을 펴놓고 있거나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커피숍의 진가는 함께 얘기를 나누는 데서 발휘된다. 쾌적한 공간, 구수한 커피 향, 옆 테이블에서 들릴 듯 말 듯 얘기소리가 나면, 모든 테이블에서 일제히 이야기가 풍발(風發)한다. 아마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이야기하던 이래로 이런 풍경은 인류가 영원히 버리고 싶지 않을 풍경일 것이다.
사람들이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는 것은 인간관계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인생관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중요하다. 최면요법의 전문가인 마이크 브라이언트에 의하면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하나의 은유(隱喩)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 숨겨진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인생관을 조정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야기이든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든,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편집자이자 서술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먼저 그 이야기를 왜,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의 주체로 변신한다. 실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오셀로'를 보면 이야기의 화자(話者)와 청자(聽者) 사이에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용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이던 중세의 베니스, 그곳에 흑인인 오셀로가 용병대장이다. 그런데 차마 쳐다보기도 무서운 검은 얼굴을 한 그가 아리따운 백인처녀 데스데모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가 극심한 인종과 나이의 벽을 극복하고 오셀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오셀로는 그가 겪었던 수많은 모험과 역경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다. 천신만고 끝에 그가 매번 살아남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그것은 오셀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수십 편의 영화와 같다. 그런 영화를 거듭해서 본 데스데모나가 주인공인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예로부터 이야기는 티내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좋은 수단이었다. 이 무더운 여름, 공부에 지치고, 앞날에 대한 걱정에 주눅 들어 있는 자녀들과 동네 커피숍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시원한 팥빙수를 사이에 두고 그들의 인생관을 긍정적으로 바꿔놓을 이야기보따리를 한번 풀어보심이 어떠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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