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순이 당진 면천초 교장 |
80년대 초반, 스물 두 살의 꽃 같은 청춘을 경상북도 영덕군의 조그만 산골 학교에서 어설픔 가득한 새내기 선생님으로 시작했다. 건장한 사내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그 시절 2학년 9살 꼬마였던 '이○○'이었다. 연전(年前)에 그 동기생들을 만났을 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좋지 않은 일로 학교를 그만 두고 대구 어딘가에서 건달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마을에 살던 또래 친구들조차 그 아이의 소식을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20여 년 간 소식 한 번 없다가 난데없이 먼 대구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공주를 오고 있다는 것이다. 풍문으로 들었던 이러저러한 사연 덕분인지 알 수 없는 부담감에 짓눌리며 다음 날 점심 약속을 하고는 한결 심란해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갑자기 날 찾는 이유가 뭘까? 다단계 판매, 공주 어딘가에 손볼 상대가 있어서 지나는 길? 혹시 사채 부탁? 유년 시절(초등 2학년) 내게 받은 상처가 있어서?'
별의별 유치한 생각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솔직히 오랜만의 만남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보다는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가진 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미 공주 시내 모 처에서 숙박을 한 그 아이는 한결 경쾌한 목소리로 내가 알려 준 장소를 알은 체 한다.
드디어 우리는 22년 만에 해후를 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빛을 본 순간 밤새 엄습했던 불안감은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30살의 건장한 사내 모습에서 난 분명 9살 꼬마 ○○이의 맑은 눈빛과 사람 좋은 미소를 보았던 것이다. 한아름 안겨준 새빨간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덥석 마주잡은 손길에서 느껴진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것이다. 아니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조폭, 건달' 이런 낱말 만을 떠올렸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선입관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그를 만났던 나의 옹졸함과 얄팍함에 얼굴 들기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동석한 그 애의 아내는 요즘 잘나가는 탤런트를 연상케 한 고운 얼굴로 수줍게 인사를 했다.
그간의 삶은 다소 거칠었어도 자신이 간직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리웠다며 속 깊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모습이 나를 많이 아프게 했다. 친구들은 청소년기 행했던 잠시의 일탈 행동 때문인지 나름대로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선뜻 곁을 주지 않는다며 씁쓸하게 미소 짓던 그 애의 허허로운 표정을 나는 정말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젠 생활의 여유를 찾은 탓인지 추억을 반추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며, 잃어버린 청소년기를 찾고자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 애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세 시간 남짓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내가 진솔한 인생 공부를 한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나 하며 살아간다. 너그러운 마음과 따뜻한 관심은 나와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 애가 전송한 사진 속에서 가족과의 아름다운 일상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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