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충 충남도립대학 총장 |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전셋집을 얻을 수도 있고 사업밑천을 할 수도 있다. 돈을 빌릴 곳조차 없다면 정말 답답한 일이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과거에는 친척이나 친구 이웃들에게 돈을 빌렸으나 지금은 금융기관이 이를 대신해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돈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돈을 빌려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다 공장을 지어서 물건을 만들고 해외에 팔아서 돈을 갚았다. 개인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빌려서 땅이나 아파트를 사면 가격이 올라서 상환에 대한 부담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히 빚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80년대 처음으로 신용카드가 발급되었을 때 카드는 용돈이 없어도 항상 비상금처럼 든든했다. 하지만 매월 쓸 수 있는 한도를 다 채우다 보니까 곧 빚쟁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은행에서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한도를 넘긴 경우에도 소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매우 비싼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한번 마이너스된 통장의 잔고를 플러스로 돌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 됐다.
빚은 갚아야 하며 계속적으로 늘어난다.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경제적 노예로 전락한다. 철학자 에머슨도 “빚을 지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이나 국가나 회사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국가부채로 IMF를 겪으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고 미국은 개인들의 빚으로 경제위기를 겪었으며 그리스는 지금도 국가부채로 EU의 사실상 신탁통치를 받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자율은 떨어지고 투자할 곳이 적어 소매금융이 활성화 됐다. 정부에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계자금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대형은행은 물론 최근에는 일본자금으로 무장한 대부회사에서 무차별적으로 빚을 권하고 있다. 종편채널에서는 24시간 이자율이 최고 30%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감춘 채 필요하면 언제든 돈을 쓰라고 광고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현재 11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73%수준으로 가계부채 위험수위인 75%에 접근하고 있다. 고금리인 대부업체 대출 잔액도 10조원 규모로 250만 명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여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건수가 11만 건을 넘어서고 있고 개인워크아웃을 진행 중인 사람까지 합하면 연간 20만 명 정도가 빚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직장도 없고 판단능력도 부족한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실제로 30대 이하의 부채증가율은 11%대로 타 연령 계층에 비해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장학재단의 등록금 대출 연체율은 일반 가계대출연체율의 3.6배인 3.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도 없고 빚쟁이로 사회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삼포시대니 청년실신시대니 하면서 희망을 잃은 젊은 세대에게 매우 가혹한 일이다.
그리스를 포함해 많은 국가들이 빚으로 휘청이고 있고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도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돈을 쓰기는 쉽다. 하지만 감당할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없이 유명 연예인이 TV에 나와 빚을 권하는 것은 젊은이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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