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귀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경제조사팀장 |
이처럼 유럽 문명의 선구자였던 그리스가 350조원이 넘는 대규모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의 그리스 사태를 보면 그리스의 운명은 메르켈로 상징되는 독일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2000여 년 전 당시에는 독일은 미개한 지역에 불과했다. 독일 서부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 트리어(Trier)에 가보면 로마 황제가 사용한 목욕탕, 개선문 등을 볼 수 있다. 모젤 포도주 생산지로도 유명한 트리어는 룩셈부르크에 근접할 정도로 독일에서도 서쪽 지역에 치우쳐 있는데 2000년 전 로마제국 시대에는 유럽 북동쪽 군사전진기지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당시 로마제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모젤 강이나 라인 강 너머 미개척 지역에 독일 게르만족이 다수 거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독일이 그리스의 운명을 쥐고 있다. 원인은 독일이 유로존 출범 이후 대규모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지난해 사상 최고수준인 2000억유로 경상수지를 달성했는데 GDP 대비 8% 내외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유로지역 전체 경상수지 흑자의 67%에 해당되는데 이러한 경상수지 흑자는 경제상황에 비해 저평가된 환율 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강한 제조업에 기인한 것 같다. 독일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13년 기준 25.5%로 미국, 영국 등의 10% 내외에 비해 크게 높다. 또한 자동차, 기계류, 전기전자장비 등에서 최고 수준의 수출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면 그리스는 전체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5% 수준에 머물러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그 구성에 있어서도 첨단제조업보다는 관광관련 식음료, 담배제조, 석유정제 등에 집중돼 있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지만, 그 내용을 보면 독일처럼 제조업에 도움을 주는 생산지향적 서비스업이 아니라 관광 및 관광관련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의 소비지향적 서비스가 주도하고 있다.
우리는 독일과 그리스 경제의 이러한 차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우리는 그리스보다 관광 자원이나 유적이 훨씬 적어 제조업이 약화되면 경상수지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우리는 그리스가 갖고 있지 않은 역동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50년 간 공업화 과정을 보면 제조업이 고도화되고 기술형과 사회형 산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IT기술을 기반으로 기술융합형 전기전자, 의료기기, 의약 등의 제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와 관련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의 제조업이 당초부터 약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제공한 통계를 보면 60년대 그리스 경제성장률은 자동차, 선박, 화학 등의 발전에 힘입어 연평균 8.5%에 달했다. 70년대에도 5.5%에 달해 일본에 이은 '제2의 경제 기적'을 달성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80년대에는 0.8%로 주저앉았고 90년대에는 2.1%, 2000년대에는 2.8%에 머물렀다.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이너스 경제가 시작되었는데 2014년까지 지난 5년간 제조업을 중심으로 연평균 4.8%나 하락했다.
이처럼 그리스 경제가 가라앉게 된 것은 1981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경제정책이 제조업 경시 등으로 크게 수정된 데 있다고 한다. 경제정책 변경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경제는 고성장 체제에서 저성장 체제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상황에 있는 만큼 새로운 경제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와 달리 표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대한민국 공동체의 발전과 우리 경제 지속가능성에만 무게를 두고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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