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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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집밥

  • 승인 2015-07-21 14:16
  • 신문게재 2015-07-22 18면
  • 이경범 천안불당중 교감이경범 천안불당중 교감
▲ 이경범 천안불당중 교감
▲ 이경범 천안불당중 교감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집밥 백선생'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류 호텔의 셰프들이 고급스러운 레시피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여타 프로그램과는 달리, 그저 바라만 보던 요리에서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요리로 전환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밥'이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진행자의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집밥'에 대한 향수가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만큼은 나도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의 감칠맛이 떠오르고, 호박잎에 쪄주시던 강낭콩 떡의 거친 식감도 생각나곤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비교적 허용적인 가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 우리 4남매가 음식에 먼저 손을 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을지라도 내 뱃속만 채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먹어치우면 누군가는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밥상은 내게 기다려야 하는 곳이었고, 절제해야하는 곳이었다. 비록 보리밥일지언정 주린 뱃속에 얼른 음식물을 집어넣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참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야말로 내가 밥상을 통해 사람살이의 방법을 체득했던 시간이었고, 가난하지만 소박한 밥상 앞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몸에 익히게 된 시간이었다.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우리네 가정은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배우는 밥상머리 교육 시간을 빼앗겼다. 학생들은 지식 위주의 강박적 교육 환경 속에서 자아가 일그러지고 정서가 불안하게 되어 관용과 배려의 미덕보다는 적대와 경쟁을 배우게 되었다. 심지어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학원을 가서 점심과 저녁을 사먹고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늦은 시간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가공식품으로 채운 배는 더욱 허기가 지고, 부모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외로움을 달랜다.

한동안 학교를 떠나 교육청에 근무하다가 복귀해보니 현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겉모습은 여전히 학생이고 부모인데 부모와 자녀에게 단단히 묶여 있어야 할 신뢰의 끈이 후루룩 풀린 가정이 많았다. 자녀 사랑의 방법을 모르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의 가치 갈등에 정점을 찍는 시기는 중고등학생 시절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라서 그런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살아야 하니까 쌓였던 감정이 그때 폭발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러한 학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의 근간이 되는 부모의 양육 태도를 강조한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자녀의 부모에게 '집밥'을 해결책으로 권유한다.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집밥을 먹으며 굶주린 사랑을 채우고, 닫혔던 대화의 문을 열어보고, 바쁜 일상에 쫓겨 바라보지 못했던 자녀의 아픈 마음을 바라보라는 의미에서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인성교육이 법제화되어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학교에 인성교육에 대한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나무 열매가 하루아침에 옹골지게 여물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인성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육과 성장의 과정을 거쳐 단단하게 여물어가야 하는지라 법제화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이왕 출범한 이 법이 공감을 얻어 안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녀를 둔 부모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학교는 학생들을 내 자녀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일체가 되어 기본에 충실한 사람살이 교육을 전제로 할 때, 우리 사회가 그토록 갈망하는 인성교육의 기틀도 바로 다져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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