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 위, 찬란한 이야기의 바다가 있는…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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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 위, 찬란한 이야기의 바다가 있는…부산

근현대·생활사 담은 산복도로…김민부 전망대서 시·풍경 감상 유치환 우체통서 보내는 편지와 '까꼬막' 게스트하우스도 명물

  • 승인 2015-07-16 14:02
  • 신문게재 2015-07-17 14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주말여행]부산 초량 이바구길

▲ 유치환 우체통에서 바라보는 부산 바다. 전망대 못지 않은 풍경에 편지가 절로 써질 것 같다.
▲ 유치환 우체통에서 바라보는 부산 바다. 전망대 못지 않은 풍경에 편지가 절로 써질 것 같다.
수평으로 지르는 부산 바다. 그곳에 객들의 낭만이 있다면 수직으로 오르는 언덕에는 부산 사람들의 삶이 얹어져 있다.
부산역 건너 차이나타운을 지나면 시작되는 초량 이바구길은 6·25전쟁 피란민들에게 삶의 공간이 되어준 곳으로 산 허리를 질러 만들었다는 뜻의 산복도로다.
근현대사와 지역의 생활문화를 담아 2013년 조성된 1.5㎞ 남짓한 길은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 '이바구'라고 이름 붙여졌듯 우리가 몰랐던 부산을 이야기해준다.

길은 근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부산 최초의 개인종합병원인 백제병원과 남선 창고터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아찔함, 168계단이 보인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야 할까 싶지만 30계단만 올라가서 꺾어도 된다. 그 곳엔 김민부 전망대가 있는데 사람 이름같은 이 전망대의 명칭은 정말 김민부라는 인물에게서 따왔다.

김민부는 1956년 부산고등학교 1학년 때 시조 '석류'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신, 3학년 때 시 '균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인이다. 방송작가로,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다녔던 학교도 전망대와 가깝다. 부산역 너머 빌딩숲과 부산항대교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이 경치를 보고 그도 시를 썼을까. '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리라, 나를 보라 하리라' 언덕 쪽 벽에 쓰인 석류가 애절하게 부른다.

▲ 이바구공작소에 전시된 주경업 화가의 펜화.
▲ 이바구공작소에 전시된 주경업 화가의 펜화.
다음으로 걸음을 멈출 곳은 이바구공작소다. 공작소는 이바구길을 안내하고 자료를 모아둔 곳으로 1층엔 산복도로에 대한 설명과 물동이 등 옛 생활물품, 그리고 산복도로 사람들을 펜으로 담은 화가 주경업의 작품이 있다. '할매요, 홋떡 얼맹기요' '하모, 쉬어가야제' 하고 모델이 된 주민들이 건네는 말이 써있는데 마치 지금 귀로 듣는 것처럼 정겹고 생생하다. 2개월 마다 주제가 바뀌는 2층 전시는 스토리텔러가 친절하게 설명도 해준다.

공작소를 떠나 아래쪽 길을 조금 내려가면 '장기려 더 나눔'이라는 기념관이 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생애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한 사람에 대한 기념관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을 수 있지만, 그 삶 만큼은 아무 지식 없이 대면하더라도 울컥할만 했다. 일본군에 끌려가 갇혀있는 동안 그 안에 있던 조선인을 치료했던 박사는 26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가난한 이에게 무료 진료를 펼쳤다.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하는 환자를 위해 밤에 몰래 병원 뒷문을 열어놓았던 일은 방송국에서 동화로도 제작했다.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며 재혼하지 않고 여생을 보냈으며, 남북이산가족 상봉도 다른 많은 이산가족이 있는데 자신만 가는 건 옳지 않다며 포기했다. 옥탑방에 머물면서도 가진 게 많다며 부끄러워했다. 그를 기리는 곳의 이름이 나눔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자, 의술을 인술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 168계단
▲ 168계단
이런 인물이라면 자랑스러워 해도 좋지 않을까. 부산시는 지난 6월 서구 알로이시오기념병원부터 송도탑스빌로 이어지는 822m 구간에 명예도로 '장기려로'를 개통했다.

두 정거장 거리를 더 걸으면 전망대 부럽지 않은 경치를 배경으로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유치환 우체통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우체통 옆에는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하는 시 '행복'이 적힌 조형물과 유치환 모형이 함께 서 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실제로 1년 후에 받아볼 수 있다. 바로 옆에서 엽서를 팔면 어떨까. 펜도 종이도 없이 전하고 싶은 마음만 들고 찾아와도 바로 우체통에 담아둘 수 있도록.

이바구 여행의 마지막은 까꼬막이다. 까꼬막은 경상도 사투리로 '산비탈'이라는 뜻인데 주민협의체에서 운영하는 체험센터이자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부산 도심의 빛나는 밤을 누릴 수 있는데다 4인 기준 5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입소문이 났다. 올해 2월부터는 소셜 레지던스로 숙박기능은 물론, 파티, 회의, 워크숍도 가능한 멀티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바구길 이야기는 산복도로 위로 쌓여 가고 있을 것이다. 나란히 걷고 있는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어떤 미소를 보이고 있는지 만나볼 만하다.

▲가는 길=부산역 건너편 초량지구대에서 왼쪽으로 가면 초량초등학교가 보인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먹거리=부산하면 떠오르는 밀면, 돼지국밥으로 먼 곳에 온 기분을 내도 좋겠다. 최근 영화로 유명해진 국제시장을 찾아 거리음식을 맛보는 것도 추천한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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