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배재대 총장 |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의 명을 받은 에피메티우스와 프로메티우스 형제는 만물을 창조하는 임무를 맡았다. 에피메티우스는 형상을 만들면 프로메티우스는 적당한 능력을 부여하는 일을 했다. 예를 들어서 독수리를 에피메티우스가 만들면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를 주는 일은 프로메티우스가 맡은 것이다. 모든 동물을 창조하고 마지막으로 두 형제는 사람을 창조하였다. 이때 에피메티우스는 남자사람을 창조했고, 프로메티우스는 더 이상 남자사람에게 줄 능력이 없어 불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남자사람이 창조되었다는 기쁘면서도 괘씸한 소식을 접한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산의 신들은 판도라라는 여자사람을 창조해 남자에게 보낸다. 남자사람이 창조된 것이 기쁜 것은 드디어 창조가 끝났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고 괘씸한 이유는 프로메티우스가 신들만이 사용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누구에게도 주지 않기로 한 불의 사용법을 제우스의 허락 없이 남자사람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신이나 속이 좁기는 마찬가지라 한 번 꼬인 억한 심정은 잘 풀리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신들은 여자사람 판도라에게 자신들의 기쁜 마음과 괘씸한 마음을 모두 담아 창조했으니 여자사람이 남자사람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 수 있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신들은 창조된 판도라를 남자사람에게 보내면서 조그마한 상자에 자신들의 선물을 가득 담아 보냈다. 그리고 절대로 상자를 열지 말라고 부탁했다. '절대로 열지 말라'의 의미가 '꼭 열어봐라'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판도라는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신들의 선물이 담긴 상자를 열었다. 그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열린 상자 속에서는 인간에게 온갖 질병, 나쁜 것과 해로운 것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놀란 판도라가 상자뚜껑을 얼른 닫는 바람에 진정 나와야 할 인간에게 좋은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아직도 상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도 모든 종교나 신화에 따르면 창조자는 무생물에서 생물, 그리고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 순으로 창조한다. 이순서는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자연의 법칙을 얘기하고 있다. 동물은 식물에, 그리고 인간은 동물에 기대어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피조물의 숙명이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동물은 인간보다 강하지만 인간보다 덜 청결하다는 것이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지 않았다하더라도 인간 세상에는 병균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인간이 걸린 병은 모두 동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메르스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 메르스 환자를 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사람을 그렇게 싸늘하게 보았는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병이 옮길지도 모른다는 추측으로 욕하고 비난한 지난 두 달이었다. 다음으로 자가 격리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잠복기간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혹 남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정말 고마운 생각에 스스로 자신을 격리시켜 외롭고도 고독한 시간을 보낸 사람까지도 우리는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이 메르스 확진판단을 받은 환자이고 어떤 사람이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같은 비행기 안이나 같은 기차나 버스 안에서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우리는 같은 목소리로 주장했다. 증상이 없고 메르스 환자와 같은 고통수단을 이용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행동의 자유를 묶는다는 것은 너무나 무례한 요구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당당하게 이 모든 것을 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무엇보다 힘들었을 사람은 우리가 눈치주고 싸늘하게 바라본 그들이다. 이제 하늘에서도 단비가 내리고 메르스 확진자도 사망자도 없으니 혹 자신도 모르게 고통 준 사람이 없는지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메르스 때문에 그 동안 고생한 의료진에게 진정한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메르스가 남긴 교훈을 찬찬히 짚어보고 다시는 겪지 말아야할 지혜를 찾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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