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은 자생자멸(自生自滅)하는 것인데 물리적으로 순환구조가 뒤틀려버리면 원형이 훼손돼 문화생태계에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충남지역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단절되거나 변형된 문화유산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보부상과 중고제다. 훼손되고 사라진 문화와 예술의 원형을 복원하고 맥을 잇는 작업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자 책무다.
취임 두 달을 맞은 충남문화재단 이종원(56) 초대 대표이사를 만나 앞으로 그려나갈 재단의 미래와 도민을 행복하게 할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충남문화재단의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된 소감이 어떤지 말씀해 주시죠.
▲취임 두 달이 지났지만 충남도민이 문화재단에 거는 기대를 생각하면 책임감이 무거워집니다. 예술계 인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더욱 그런생각이 듭니다.
재단직원과 함께 지역의 문화예술계와 소통하고 합심·협력해 '문화예술로 행복한 충남'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각오입니다.
충남문화재단이 전국에서 가장 늦게 탄생했지만 문화예술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해 충남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보다 비옥하게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대표이사로서 문화재단의 경영방침은 세우셨나요?
▲충·효·예의 고장 충남은 문화예술 자원의 보고입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그 일을 소홀히 하다보니 문화예술 불모지란 불명예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불모지라는 아름답지 않는 멍에를 털어내는 게 큰 틀의 경영방침입니다.
그러나 충남도와 도의회, 문화예술계의 협력과 합심이 동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문화재단이 중심이 되는 충남형 문화예술 거버넌스를 구축해 충남문화예술 융성의 동력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충남의 문화예술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충남은 도시와 농·어촌이 공존하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광역도입니다.
도시지역인 천안·아산을 제외하면 문화예술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노령층이 주로 거주하는 농촌과 어촌은 문화예술 인프라를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충남의 문화예술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도시와 농촌, 어촌지역 주민을 위한 맞춤식 문화예술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진단해 '문화예술 보부상' 제도를 운영해볼 계획입니다.
예를들면 낙후된 지역의 도민을 찾아가 영화, 작은 연주회, 연극 공연 등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충남의 문화예술 현주소는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구대비 예술가나 예술단체 수가 타 시·도에 비해 적습니다. 극장조차 없는 시·군도 많고, 공연단체 수로만 봐도 전국 2108개중 40개로 1.9%에 불과합니다. 이는 문화예술 생태계가 그만큼 척박하다는 반증입니다.
문화예술 실태 진단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생산과 공급을 확충하고 더불어 역동적인 소비층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임기 중 추진할 역점사업은 뭔가요?
▲우선은 문화예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충남은 문화예술의 생산과 공급, 소비가 모두 부족합니다. 백제문화와 내포문화, 유교문화, 불교와 천주교 유적 등 자원이 많은데도 이를 활용해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드는데 소홀했습니다.
예술가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지원해 공급을 늘리고, 도민들에게는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문화 소비자로 거듭나게 하는 등 건강한 문화예술 환경과 여건을 차근차근 조성해 나갈겁니다.
이와 함께 충남에만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전통문화예술을 발굴해 활성화 시킬 것입니다.
특히 충남의 전통과 지역 정서가 녹아있는 고유한 문화 중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단절된 것들을 찾고 복원해 끊긴 맥을 이어 혈이 다시 돌도록 하는 등 충남만의 정체성을 지닌 문화예술을 가꾸어 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물류와 정보 전달 기능을 수행했던 보부상의 전통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 해 볼 생각입니다. '보부상 거리축제', '보부상 장마당 축제' 등을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대학과 공동으로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명맥을 제대로 잇지 못한 '중고제' 복원과 '심화영류 서산 승무'를 조명하는 것도 문화재단이 해야 할 중요한 사업입니다.
-중고제는 무엇이고, 구체적인 복원 로드맵은 어떻게 되나요?
▲중고제는 서편제, 동편제와 함께 판소리 3대 유파중 하나로 충청도 정서가 짙게 밴 충청도 소리입니다. 동·서편제와 다르게 중고제는 소리의 고저가 분명하고 부드러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판소리하면 흔히 전라도를 떠 올리는데 사실 판소리 본고장은 충남입니다. 조선말 판소리 명창 가운데 상당수가 충남 태생이고 근대 판소리 5대 명창 중 두 명(이동백·김창룡)이 서천 출신입니다. 서천의 김성옥-김정근-김창룡-김세준으로 이어지는 판소리 명문가와 서산의 심정순, 홍성의 한성준, 공주의 박동진 등 면면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당시 국악계에서 중고제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강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중고제가 처한 현실은 초라합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동편제 소리축제, 보성에서는 서편제 축제가 2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데 충남에서는 변변한 중고제 축제 하나 없는 형편입니다. 서천에 중고제 판소리 학교가 생기는 작은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 중고제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해 단계적 복원 프로젝트를 세워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학술세미나와 연구 작업을 토대로 복원의 당위성을 전국민에게 알려 단계적으로 복원작업을 추진할 각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예술인, 도와 도의회, 도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복원 프로젝트 계획이 마련되면 각계각층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재단의 사업 중에서 도민들이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시죠.
▲지역이 넓은 도농복합 형태에 계층이 각양각색이다 보니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마을 회관이나 활용하지 않는 창고, 폐교 등을 이용해 박물관 등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박물관에는 쓰지 않는 농기구,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만든 짚풀 공예 등을 전시해 마을의 명소로 가꿔볼 생각입니다.
극장이 없어 가장 기본적인 문화 혜택인 영화조차 감상할 수 없는 시·군이 많은데 시범적으로 경로당 등에 작은 영화관도 개설·운영해 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금강 발원지부터 하구둑까지 명사와 금강을 따라 걷는 힐링 프로그램인 인문학 길 '금강천리'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여기에 명사특강과 국악공연과 황포돛배, 지역의 특색있는 먹거리 체험 등 특별한 이벤트를 가미하면 충남만이 할 수 있는 명품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대담=이승규 내포본부 부국장·정리=유희성·사진=박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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