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괜찮이즘과 귀찮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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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 괜찮이즘과 귀찮이즘

  • 승인 2015-07-07 14:12
  • 신문게재 2015-07-08 19면
  •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괜찮다'라는 말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탈이나 문제,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일상 대화에서는 '무방하다', '걱정할 것 없다'로 참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요즘 같은 여름철 “뭐 시원한 것 좀 줄까?”라는 물음에 “아니 괜찮아”라고 흔히 하는 답에서 알 수 있듯 잘 사용하면 자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담아낼 수 있다. 호의를 베풀려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불쾌하게 느끼지 않도록 거절하는 마법의 낱말인 것이다. 또한 “괜찮은 사람이군”에서 '괜찮은'은 '별로 나쁘지 않고 쓸 만한'이라는 뜻이다.

이 '괜찮다'라는 말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썩 괜찮은 말 '괜찮다'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행위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사용될 때가 많다는 데 있다. 버스전용차로제를 위반하면서, 허가 받지 않은 차량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세우면서, 갖은 방법으로 불법어로를 하면서, 남의 작품을 슬쩍 표절하면서 아마 속으로는 다들 그랬을 것이다. 괜찮아. 위법이나 편법을 저지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쳇말로 '퉁' 치는 이런 작은 버릇들이 모이면 결국 우리가 함께 가꿔가고 있는 공공의 큰 가치들이 무너진다.

한편 '귀찮다'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는 뜻이다. 본래 '귀(貴)하지 아니하다'의 준말로서 “너무 친절하게 굴어 귀찮을 지경이야”처럼 쓰여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거나 하려 할 때, 아니 다른 이가 함께 하자거나 도와준다 할 때도 '귀찮다'면서 시작조차 하지 않기 일쑤다. 문제는 이 '귀찮다'가 어떤 생각이나 행위를 하지 않는 까닭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라고 둘러대는, 역시 '퉁' 치는 자기변명을 품고 있다는 데 있다.

버스전용차로의 주행은 적어도 9인승 이상 차량이어야 하며, 그마저 12인승까지는 6인 이상이 탑승해야 한다. 따라서 9인승 미만의 차량은 설령 어른 무릎에 어린 아이까지 앉혀 9명이 되어도 버스전용차로를 달려서는 안 된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의 주차는 반드시 관련 표지가 붙은 차량으로서 보행상의 장애가 있는 자가 탄 경우에만 허용한다. 민물에서는 대개 외줄낚시, 외통발, 족대, 반두가 아닌 도구로는 물고기를 잡아서는 안 되며, 쏘가리의 경우 4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 중 각 지역별 40일 동안, 그리고 18cm 이하는 연중 포획해서는 안 된다. 최근 논란이 된 소설 표절도 우리 사회의 보통 양식과 양심에 견주어만 봐도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서넛밖에 타지 않은 9~12인승 차량이, 또 9인승 미만인 대부분의 SUV나 RV 차량이 너무도 당당하게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는 것을 우리는 눈이 아프도록 목격할 수 있다. 보행 장애자를 태우지 않은 차량을 대형마트 장애인주차구역에 대고는 멀쩡한 사람만 내려 코앞의 유리문을 버젓이 밀치고 들어가는 것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투망이나 삼중그물, 심지어 배터리로 물고기를 잡고, 민물고기 매운탕에는 18cm가 안 되는 쏘가리들이 잘도 들어 있다. 이 나라의 대표작가 군에 속하는 한 소설가는 여러 작품에서 오래도록 심각한 수준의 표절을 저질러 왔다.

이런 모든 것들을 실은 다 알고 있는 우리가 짐짓 '괜찮다'거나 '귀찮다'면서 침묵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자신과 다른 이의 생각과 행위를 너무 쉽게 정당화해 버리는 괜찮이즘,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생각과 행위를 지레 포기한 채 심리적 무력감에 빠지거나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에 마땅히 이의를 제기해야 함에도 오직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리하지 아니하는 귀찮이즘. 이미 알아챘겠지만 이 둘은 한배에서 나온 동기간이다. 나의 괜찮이즘과 당신의 귀찮이즘, 아니면 당신의 괜찮이즘과 나의 귀찮이즘. 버스전용차로 주행 위반,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주차 위반, 불법어로, 표절 등은 어쩌면 다 우리의 괜찮이즘과 귀찮이즘이 자행하는 공범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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