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는 일반 컴퓨터보다 연산속도가 수십~수백배 빠르다. 데이터 용량이 많거나 복잡할 수록 슈퍼컴퓨터가 필요해진다. 컴퓨터 1000대로 한 문제를 계산할 때 1만㎾의 전력으로 10일을 계산해야 하지만,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면 5000㎾의 전력으로 단 이틀이면 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와선 활용분야가 대폭 늘어났다. 기업들이 아이디어의 산업화를 위한 모의 실험, 신제품 개발을 위한 데이터 획득, 소비자 심리나 유행 경향 등 방대하 빅 데이터 분석에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를 발견해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이끈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업적 뒤에는 슈퍼컴퓨터가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연산속도가 빠른 슈퍼컴퓨터는 중국 광저우 국립 슈퍼컴퓨터센터에 있는 톈허-2(은하수2)다. 두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는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 있는 타이탄, 3위는 역시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 있는 세콰이어다. 바로 뒤를 잇는 슈퍼컴퓨터는 일본 리켄 응용과학연구소에 있는 케이컴퓨터다.
한 마디로 미국과 중국의 각축 속에 일본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최근 슈퍼컴퓨터 부품의 중국 판매를 금지하도록 했고, 중국 리커창 총리는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슈퍼컴을 개발하겠다고 엄포하는 등 양국이 슈퍼컴퓨터를 둘러싼 전쟁 중이다.
하지만 중국의 슈퍼컴 개발은 오히려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1위 슈퍼컴을 보유한 중국은 슈퍼컴 투자를 삭감하려는 분위기였지만 미국의 조치에 반발하면서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중국에 막대한 투자를 한 인텔이 미국의 수출금지 조치 얼마 후 중국 학술원과 새로운 슈퍼컴퓨팅 연구센터 설립을 발표하는 등 인텔도 미국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결국 미국과 중국 중 슈퍼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뒤쳐지는 한국=우리나라 최초의 슈퍼컴퓨터는 1988년 11월 연구전산망(KREOnet)의 중앙전산기로 도입된 2GFlops 성능의 Cray-2S다. 1993년 11월에는 슈퍼컴퓨터 2호기로 16GFlops 성능의 Cray-C90가 도입됐다.
현재 국내 유일한 공용 슈퍼컴퓨터인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의 '타키온Ⅱ'로, 2009년 도입 당시 연산속도가 세계 14위였지만 2013년 107위, 2014년 201위로 뚝 떨어졌다. 세계적 톱 500대의 슈퍼컴 중 미국이 250여 대를, 일본과 중국이 각각 30대, 60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슈퍼컴은 공용 기준 4대가 고작이다. 이 중 3대는 기상청이 보유해 기상관측과 일기예보에 활용하고 있다.
세계 유명기업들이 신약과 신제품 개발, 빅데이터 분석 등에 슈퍼컴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타키온Ⅱ의 산업계 이용률은 10%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민간에서 빌려 이용할 수 있는 슈퍼컴은 타키온Ⅱ뿐이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90%를 활용한다. 예약은 이미 포화상태다.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이 갖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도 9대가 전부다. 이들 컴퓨터도 세계 순위에서 100~300위권 수준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2013년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기본계획'을 만들어 세계 7대강국을 실현하겠다고 했지만 업계에선 의문을 품고 있다.
KAIST는 지난 2일 강성모 총장과 권오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등 전문가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고성능 컴퓨팅 발전 포럼' 출범식을 가졌다. 초고성능 컴퓨팅 기술의 해외 도입과 운용 위주의 정책을 탈피해 우리나라 독자적으로 세계적인 컴퓨팅 기술 경쟁력을 중장기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이 포럼은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논의를 위해 슈퍼 컴퓨팅, 뉴로 컴퓨팅, 양자 컴퓨팅, 클러스터 컴퓨팅 등 분야별 실무 분과를 조직, 운영할 예정이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창조경제를 표방했는데 이를 위해선 슈퍼컴 발전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라며 “현재 마련한 계획을 보완하고, 각 분야별로 세부화 해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cds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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