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그런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퍼뜨리는 것은 전염병만이 아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다른 것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그중에는 전염병처럼 나쁜 것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좋은 것들이 더 많다. 사람을 이 좋은 것들을 퍼뜨리는 존재로 만들 수만 있다면 교육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이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아마 욕망일 것이다. 욕망이 없다면 인간은 이미 도통한 선인이거나 죽은 사람일 것이다. 욕망 때문에 인간은 온갖 죄악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문명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동물들의 욕망과는 아주 다른 면이 있다. 인간의 욕망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르네 지라르(Rene Girard)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닌, 매개된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은 여타의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생리적 차원의 욕망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매개된 욕망, 즉 남에게서 전염된 욕망이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통해서 나에게 온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생리적 욕망 이외의 어떤 욕망이 있을 리 없어 보이는 두 아기가 사이좋게 놀고 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옆에 있던 장난감에 관심을 보인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다른 아이도 그 장난감에 관심을 보인다. 인간의 욕망은 이렇게 남을 통해서 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매개는 극대화한다. 자본은 끊임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한다. 그 중에는 없어도 될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슷한 상품이 이미 있더라도 상관없다. 기존의 것보다 좀 더 고급스럽게 만들면 그만이다. 이렇게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 과잉 생산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는 결국 인간의 욕망에, 그것도 매개된 욕망에 의존하는 체제다.
상품은 그 자체가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욕망의 대부분은 광고나 타인을 통해서 매개된다. 아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멋진 외제차를 타는 것을 보면 나도 한 대 살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약했던 욕망이 이웃을 통해서 생기거나 강화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욕망이다.
21세의 광고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을 사용한다. 광고모델이 소비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려면 외모 이외에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 최근엔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인기연예인들이 대거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하루 종일 이런 광고들에 노출되는 우리는 부지중에 그 욕망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욕망의 매개라고 하는 인간의 성향은 가정은 물론 교육현장에서도 늘 일어나고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은 부모형제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그들의 욕망을 키우며,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동급생들을 통해서 욕망이 매개된다. 인간은 본시 남의 것을 모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전염시킨다. 필자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한 때 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것이면 뭐든 따라 했다. 쉬는 시간에 교수님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부지중에 슈퍼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
교육자는 지식의 전달자만이 아니다. 그는 학생들의 모델이자 욕망의 매개자이기도 하다. 그것도 슈퍼 매개자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학생들에게 전염되고 모방된다. 그의 언행심사가 모범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부모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들과 자녀 사이에는 욕망의 매개를 더 쉽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내가 무엇을 퍼뜨리고 다녔을까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는 손을 씻으면서 마음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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