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규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 |
우선 의심 또는 확진 판정에 받았다는 이유로, 서울의 모 병원을 들렀다는 이유로, 그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한번 마주쳤다는 이유로, 그들이 한 번 들른 적이 있다는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머문 숙소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송하는 차량을 운전했다는 이유로 격리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수천 명의 고통과 아픔을 우리는 보듬어야 한다.
특히 십여㎏에 달하는 장비를 걸치고 땀을 흘리며 감염 위험을 감수하면서 치료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인과 그 가족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또한, 수천 명의 삼성병원 비정규직도 우리 사회가 보듬고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 재래시장의 상인들, 여행특수를 놓쳐버린 관광업체들, 대중교통을 피해 자전거나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수술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무기한 연기 통보를 받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 주요 병원의 응급실이 폐쇄돼 전전긍긍하며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는 환자들, 남미에서 열리는 신상품 홍보행사 취소통보를 받은 기업 경영자들, 외국 바이어를 만나야 하는데 갑자기 취소된 사람들, 백수 탈피를 위해 날밤을 새우며 준비했으나 무기 연기된 시험 날짜로 인해 애태우는 취업 재수생들, 세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며칠 남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광주의 시민들, 더 나빠진 경제상황으로 인해 애태우는 수많은 서민들 등 메르스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우리는 이해하고 껴안아야 한다.
물론 메르스 환자로 확정 혹은 의심환자로 판명돼 격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병원, 동네 목욕탕에 들어가고 심지어는 제주도 여행까지 해 투숙한 호텔이나 렌터카 회사 등을 초토화시켜 버린 이기적인 사람들은 당연히 지탄을 받아야 한다. 다만 처지를 바꿔 공공의료시스템이 미흡하고 정부의 대처가 잘못된 상황에서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과연 다르게 행동했을까'하고 생각해 보면 일방적으로 그들만 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년의 세월호 사태가 우리에게 알려 준 귀중한 교훈, 즉 국가 재난 때에는 국민생명과 안전을 위해 대통령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부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초동대처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전혀 지키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 전쟁 상황이 벌어져도 과연 '아몰라' 대통령일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가지게 하는 상황, 좌충우돌 우왕좌왕 허우적대며 비밀주의, 무책임, 무대책, 무능으로 치닫는 정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서울시민을 위한 컨트롤타워를 자청하고 나선 시장을 오히려 고발하는 어이없는 현실, 메르스 상황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공공의료기관을 적자가 난다고 폐쇄하는 결정을 하는 어이없는 어느 도지사가 큰 소리 치는 상황 등은 반드시 고쳐야 할 대상임을 분명해졌다. 신뢰란 유리 같아서 한번 깨지면 원래대로 회복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물론 '이번 주가 고비다', '병원 내 감염만 있다', '메르스가 한풀 꺾였다'라는 말을 앵무새같이 계속해야 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심정만은 이해할 수 있다.
메르스는 우리에게 대동세상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껴안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오늘 겪고 있는 메르스의 고통은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앞으로 가기 위한 시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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