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화 공주 의당초 교장 |
숲길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노라면 나도 숲의 일부가 된 듯 마음이 열리며 숲의 움직임과 바람결에 나부끼는 소리가 마치 대화를 시도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빼곡히 들어찬 숲에서 올려다보는 하늘, 나무는 그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 한 가닥만 있어도 새잎을 내고 이슬 한 방울만 있어도 뿌리를 뻗는다는 어느 저자의 말을 실감한다. 숲의 구성원이 되려면 숲의 질서에 맞게 변해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가지치기를 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나서 다른 가지에 방해가 되거나 다른 나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햇빛을 터주기 위해 한쪽 방향을 양보해 함께 숲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생존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질서가 있음에 감탄한다.
대숲 오솔길 입구에서 만나는 대나무는 단단한 뿌리내림과 마디마다 있는 생장점으로 인해 어리고 연한 죽순이 올라온 후 하루에 50cm~1m까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다. 퀀텀 리프(quantum leap)!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여 강한 비바람과 매서운 추위를 이기는 유연한 줄기를 뻗어 어느새 숲의 하늘 끝에 닿을 만큼 자란다. 초여름 성장이 끝나고 나면 몇 년 동안 부지런히 땅속줄기에 양분을 보내 다음 싹을 틔울 준비에 힘쓰는 것은 다음 세대 양성을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교육적 노력에 비유할 수 있겠다.
대는 강하면서도 강하지 않고 연하면서도 연하지 않아 휘어서 광주리를 만들고, 가늘게 쪼개거나 잘라서 생활용품으로 두루 사용하던 조상들의 지혜를 추억한다. 또한 대나무는 사철 푸른 잎을 지니고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특징 때문에 옛날부터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선비의 지조와 절개에 비유되곤 하지 않았던가! 대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고 맑고 곧은 청백리의 삶을 살고자 했던 옛 선비들의 고고함을 되새기는 것은 숲에서 얻는 고마운 깨달음이다.
대숲을 지나 안전 계단을 오르면 살짝 트인 숲 사이로 웅장하게 지어진 꿈나래관이 보인다. 아이들이 꿈의 나래를 펴고 잘 성장해 별이 되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열리는 우리학교의 축제 이름은 '꿈별 축제'다. 교육가족이 함께 웃으며 감동의 시간을 보냈던 일을 떠올리며 모퉁이를 돌아 오솔길로 접어들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참나무 한그루와 마주한다. 수령이 100년도 넘었을 나무는 드러낸 뿌리와 수형의 올곧음으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큰 나무 아래에는 그늘진 곳을 좋아하여 자생하는 작은 나무들이 있다.
어린잎을 살살 부비면 산뜻한 허브향을 선물해 주는 비목나무와 어린잎에서 생강냄새가 난다는 생강나무 옆에 잠시 서게 된다. 생강나무는 그 냄새 때문에 한 번 보고, 잎 모양이 하트모양, 산 모양, 둥근 모양으로 다양해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게 된다. 아이들의 탐구 재료로 안성맞춤이다. 대숲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의 양쪽엔 자두나무와 석류나무가 있다. 학교 숲 아래 꽃밭에는 풀꽃과 함께 사과나무도 자란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는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은 유실수다.
숲에서 보는 나무들의 생장(生長)을 통해 나는 교육을 생각한다.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며,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교육과 학습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고 꿈나무들의 성장을 응원하며 돕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각각의 특성을 유지하며 공존을 위한 그들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개성을 가지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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