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함께 군생활한 고인을 만나러 온 최현식(사진 왼쪽)씨가 묘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별하(12·여)네 가족은 별하의 할아버지가 안장된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별하는 할아버지인 고 유백열 육군원사 품에 안겨보지 못했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말씀처럼 멋진 군인으로 나라를 지켜온 것을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별하는 매년 엄마와 할머니 손을 잡고 현충원을 찾아오며 할아버지 같은 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 및 순국선열의 넋과 조우하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내무반을 함께 쓴 동기를 만나러 대전 복수동에서 온 최현석(70)씨도 많은 추모객 중 한 명이었다.
2009년 세상을 떠난 고 김상현 육군중령 묘지 앞에 선 그는 고인을 자상하고 온화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1967년 임관 후 정년까지 참군인으로 살았던 고 김 중령을 기억해 매년 6월 5일에 대전현충원에서 고인의 유족과 모여 고인을 추억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서 찾아온 추모객도 있었다.
엄정자(74·여)씨는 2008년 별세한 고 황상덕 육군소령의 부인으로 배낭에 남편이 좋아하던 빵과 오렌지, 커피 등을 넣어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현충원까지 왔다.
베트남전쟁에 통역장교로 1년간 파병 갔던 황 소령은 60대 후반 폐 조직이 돌처럼 굳어지는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지만,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술 담배와 멀었기에 베트남전쟁 고엽제 피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 엄씨는 남편 묘역 앞에서 아쉽게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기자가 찾은 현충원 제3묘역 한 중간에는 하얀 우산을 쓴 중년 여성 한 명이 묘비 앞에 앉아 있었다.
묘비 밑엔 사진 하나가 놓여있었다. 20대 건장한 청년이 엄마와 마주보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이 좋아했던 피자를 사와 먹고 있었다.
군복무 중 감전사로 27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억하며 엄마는 한참을 아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눈물 흘렸다.
1985년 국립대전현충원 개원 이래 처음으로 현충일 추념식이 메르스의 영향으로 취소됐지만,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 발길은 이어졌다.
임효인 수습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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