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사회를 더 아름답게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표하고 있는 학생. |
요즘 인문학이 급부상하고 있다. 학교마다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음을 볼 때 앞서 푸념한 개똥철학과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난해부터 인문소양선도학교로 지정돼 관련 교육활동을 펼치는 천안여자고등학교(교장 허삼복)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요즘 학교마다 왜 인문학 열풍인지를 가늠해본다.
“요즘 시대를 88만원세대, 삼포세대라고 합니다. 앞으로 삶에 대한 목표와 통찰 없이는 올바른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온전한 '나'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인문교육이 절실한 때라 생각됐습니다.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채우는 교육, '나는 누구인가?' 자아에 대한 발견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교육이라 생각돼 인문학당을 계획하게 됐습니다.”
허삼복 교장은 인문소양 교육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허 교장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지도해온 인문학은 어느새 학생들에게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다양한 교육적 기회로 다가선다.
문득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를 다시금 생각게 한다.
과연 '나'는 뭘까?
천안여고는 학교가 인문소양 교육을 진행하려면 무엇보다 교직원 모두 하나 된 마음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난해 처음 인문소양선도학교로 지정됐을 때 천안여고는 당장 실천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다르마스쿨(Dharma School)'란 교사동아리를 만들었다.
인문소양교육을 위한 일종의 TF팀인 다르마스쿨은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등 인문학 관련 교과 교사운영 협의체로서 동아리 회원들은 정기적 만나 수업에서 이뤄질 수 있는 인문소양 교육방법을 논의한다.
아울러 다르마스쿨 회원들은 인문소양교육의 핵심적인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접하고, 나아가 인문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정신을 전달한다.
천안여고가 인문학과 함께하는 인문소양교육의 핵심과제는 앞서 밝힌 인문학적 지식을 통한 인문정신 전달과 이를 교과와 연계한 캠프 활동 구성, 인성발달을 위한 봉사활동 등 크게 3가지다.
▲인문학 강좌: 보고 들으며 생각을 넓혀요
천안여고의 인문학 강좌는 다양한 주제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강의를 개설한 천안여고는 무엇보다 강의의 질을 높이고,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인근지역의 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이 강세다.
천안여고는 금강대, 남서울대, 상명대와 인문학 MOU를 체결해 각 대학의 다양한 인적자원을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이 인문소양을 신장하고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한다.
▲ 국어캠프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대표적인 강좌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김도연 소설가)', '중국사를 통해 본 역사인식의 중요성(조관희 상명대 교수)', '일상과 예술, 무용과 연극 그 경계를 너머(이화원 상명대 교수)', '가족의 의미 재조명(심광진 영화감독)' 등이다.
이렇듯 천안여고 인문학 강좌는 단순히 강의 내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분야의 주제로 강의와 체험, 탐방 활동이 함께 어우러진다.
“다양한 주제의 강좌가 인문소양뿐만 아니라 아직 구체화하지 못한 학생들의 진로 찾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인문학 강좌는 학교교육과정에서 배운 수업내용의 심화한 지식을 배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 이진우 교사는 인문학 강좌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적, 인성적 측면의 변화를 가져왔음을 강조했다.
“인문학 강의를 통해 평소 시가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물을 사랑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1학년 선영빈 학생의 말처럼 천안여고 인문학 강좌는 어느덧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 인문학 강좌는 시민교육의 하나로 대학, 주민센터, 공공기관 등지에서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 말고도 학생들이 다양한 강의를 접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면 어떨까 물음을 던진다.
▲인문학 캠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 국어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홍보하고 있다. |
이 학교 김나영 교사는 인문학 캠프는 학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는 곧 학생들의 대학입학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을 내다보는 가장 중요한 교육 즉, '아름다운 삶을 위한 인문학당'이라고 이름 붙인 천안여고 인문소양교육의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인문학 캠프는 우선 지정도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삶의 의미에 대해 나누고 교과협의회를 통해 선별한 36개의 삶의 의미와 관련된 부도서 중 자율적으로 선택해 읽으며, 삶의 방향과 목적을 설정해 보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발표하는 국어캠프를 들 수 있다.
또 <황허에 떨어진 꽃잎>을 읽고 뮤지컬의 요소인 줄거리를 정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창작, 무용 안무를 짜보면서 뮤지컬을 완성해 음악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는 음악 캠프와 미술작가의 삶을 책으로 읽고 작가의 삶을 일러스트로 구성해 본 뒤, 자신의 삶을 재해석해 일러스트레이션, 콜라주로 표현해 보는 미술캠프도 있다.
각각의 캠프는 그러나 따로가 아니다. 책과 음악, 미술을 통해 청소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자 교육인 '나'를 찾아가는 공통의 과정이 담겨 있다.
이밖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천적 활동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공주·부여 일대의 백제문화유산 답사 등을 통한 역사캠프 등은 나를 넘어서 사회란 울타리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한다.
인문학 캠프에 참여한 서예은 학생(1학년)은 “국어캠프에서 현재의 내가, 또 미래의 내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는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그 꿈을 모두 이루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세상은 지금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너그러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천안여고 인문학 캠프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보여주면서 지금이 가장 인문교육이 꼭 필요한 시기임을 알려줬다.
▲봉사활동: 세상을 위한 실천적 이성
인문소양은 실천하는 이성이어야 한다. 이 말은 천안여고의 교육철학을 바로 보여준다.
천안여고는 교육봉사동아리 학생들을 조직해 지역내 신명지역아동센터, 미래지역 아동센터를 매주 찾는다. 이곳에서 동아리 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교육 재능 기부 봉사활동에 흠뻑 빠져 있다.
뿐만 아니다. 천안여고는 월드비전에서 이뤄지는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 활동에 전교생이 참여해 모두 37개 학급에서 37명의 세계빈곤국가의 아이들과 결연을 하여 후원하고 있다.
실천적 지성을 내면화하는 노력은 최근 네팔 대지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학생회에서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해 교직원과 학생들이 총 208만원의 성금을 모아 월드비전에 기부한 것이다.
각설하고 미래핵심역량의 가치로 왜 인문학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내포=이승규 기자 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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