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충 충남도립대 총장 |
하지만 살아가면서 기억이 나는 것보다는 안 나서 실망할 때가 더 많다. 시험 볼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밤새 외웠는데 막상 시험지를 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 시험을 기약하면서 만족해야 했다. 준비한다고 준비하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시험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직장에서도 기억과의 싸움은 계속된다. 기억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얼굴을 보면 당연히 아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 이름을 줄줄이 말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하고 싶어진다. 가끔은 술을 마신다. 어느 순간에서부터 기억이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불안 불안하다. 어제 저녁에 실수한 것 없었나 눈치를 살피다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이 확인되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지만 일정기간 지나면 또 발생한다. 술 하나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기억력은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이다. 각종 시험이 그것이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답을 많이 맞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시험점수가 높은 사람은 우수한 사람으로 인정된다. 각종 시험에도 합격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많은 봉급을 받아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입시에 목숨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억력은 선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를 높이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나이가 한참 들었을 때 망각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현재나 미래의 삶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실종된 딸을 10년째 찾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은 가출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어머니는 실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0년 전의 기억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사여부라도 알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라고 한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기억이 미래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만 살 수는 없다. 과거를 망각해서도 안 되지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재료로서 기억이 활용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과거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탓을 너무 쉽게 한다. 과거를 분석하고 지혜를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변화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에 우리의 역량을 더욱 집중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국민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일 보다는 억울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말은 않지만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일 한 두 가지 쯤은 가슴속에 묻고 살아간다. 잊어지지 않지만 잊으려고 애를 쓴다. 포기하거나 체념하거나 용서하는 방법도 과거를 잊는 좋은 방법이다. 망각이라는 인간의 능력은 이를 도와 줄 것이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내일은 오늘 보다 희망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