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2. 일방적 평가, 소통 차단한 정부
3. 갈수록 심한 중앙기관의 '갑질'
4. 평가 능력 갖춘 지자체
5. 중앙기관 평가, 연대로 활로 찾자
2015년 6월, 지방자치 부활 2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완전한 지방자치 실현을 향한 발걸음은 더디다. 중앙행정기관의 주요 정책과 사업의 실질적인 수요자(고객)인 지방정부는 중앙기관이 내놓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오히려 지방정부는 중앙에 예속돼 '갑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감히, 말하려 한다. “이제 지방정부도 중앙행정기관이 하는 일을 평가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시민사회단체, 학계 등과 함께 중앙행정기관의 일방적 평가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지방'이 중앙행정기관을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위한 첫 논의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중앙행정기관은 모두 42곳이다. 장관급이 21개, 차관급이 21곳이다. 중앙행정기관은 매년 전국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합동평가를 한다.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이뤄지는 합동평가 항목은 매년 차이가 있다. 올해에는 일반행정에서부터 복지·사회, 보건·위생, 지역경제, 지역개발, 문화·여성, 환경·산림, 안전관리, 중점과제 등 9개 분야의, 26개 시책, 91개 지표, 238개 세부지표로 평가한다. 참여하는 중앙기관만 30곳에 가깝고 평가 기간만 7개월 걸리고, 결과에 따라 특별교부세 등 인센티브를 차등 지원한다.
말 그대로, 중앙행정기관은 자신들의 주요 정책과 사업이 지역에서 잘 되고 있는지를 보고 지자체를 구분해 점수를 주며 돈을 준다.
그러나 중앙기관의 정책과 사업에 대해 지역이 평가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다시 말해, 중앙기관이 시킨 일을 지방이 잘 따르고 있는지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좋은 정책인지, 그렇지 않은 사업인지를 수요자인 지자체로부터 평가도 받지 않은 채 실행 성과만 요구하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당연히 지자체도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전문가그룹 등 지역역량을 통한 평가지표 개발로 신뢰할 만한 평가를 한다면 정부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불통(通) 구조지만, 지자체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기관이 재정과 사업, 평가 등의 권한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쌍방향 소통과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내세운 정부3.0 시대임에도, 의견 개진 통로가 차단된 상태다.
문창기 대전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중앙과 지방의 관계가 동등해야 하지만, 실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하관계”라며 “심지어 자치단체의 조례 폐지까지 요구하며 자치입법권까지 침해할 정도”라고 말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행정기관의 '갑질'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전의 경우 사이언스 콤플렉스 조성을 위해 500억원 지원을 약속했던 미래창조과학부의 약속 파기와 KTX 호남고속철도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애매한 정책 결정이 대표적이다. 옛 충남도청사 부지 국가매입과 회덕IC 건설 국비 반영 지연, 충청권 광역철도망과 대전컨벤션센터 다목적전시장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연기 등 현안사업에 대한 정부부처의 '길들이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현안사업에 대한 미진한 부분을 모두 중앙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니지만, 부처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앙기관 입장에서는 아직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얘기다. 정부세종청사 내 부처 관계자는 “평가체계가 만들어지더라도 지역마다 특성이 있어 사업에 따라 마찰이 생길 수 있어 자칫 평가 자체를 불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시·도지사 또는 의장협의회나 시민단체, 학계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나선다면 현실적으로 평가체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20년 된 지방자치 전반을 근본적으로 평가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