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인기 소설가가 들려주는 영화와 세상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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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인기 소설가가 들려주는 영화와 세상의 상관관계

신세계서 이항대립을… 건축학개론서 인간의 욕망을 현재 자신의 지위를 알고 싶다면 '폰 스택' 게임 추천

  • 승인 2015-05-21 14:53
  • 신문게재 2015-05-22 18면
  • 백애영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백애영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소설가가 소설만 쓰는 시대는 지났다. 수필·영화평론·고전음악감상·인문학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팔방미인 소설가들이 많아지면서 소설가의 영역을 한정 짓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팔방미인 소설가의 선봉에 김영하씨가 있다. 작가는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국내의 굵직한 문학상은 거의 휩쓸었다.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며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한마디로 잘나가는 소설가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뿐만 아니라 책읽어주는 팟캐스트, 강연과 인터뷰, 독자와의 만남, TV 출연 등 경계 없는 문학 활동을 꾸준히 펼치며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백애영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
▲ 백애영 유성구평생학습원 노은도서관 사서
김영하 작가가 최근에 낸 산문집 '보다'는 '영화와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묶은 것으로 '말하다', '읽다'와 함께 순차적으로 출간(혹은 예정)한 3부작 중에서 첫 번째 산문집이다. 최근에 출간된 '말하다'는 강연과 인터뷰를 묶었고 곧 출간할 '읽다'는 독서와 책에 관한 글을 묶은 것이다. 평소 보고 읽고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의 가치관이 잘 나타난 알짜 산문집이라 하겠다. 작가는 소설가로서 소설 아닌 글들을 줄줄이 묶어낸다는 게 머쓱하다고 말했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반가울 수는 없는 일이다.

'보다'는 작가가 인상 깊게 본 영화와 같은 맥락에 있는 책, 여기에 작가가 경험한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까지 곁들여져서 마치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보는 듯 다채롭다. 작가는 우리가 무심히 보고 지나치는 것들을 새롭게 응시하고 남다르게 사유하면서 세상에 서슴없이 말을 건다.

예를 들면 시간이 거래되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생존 시간 카드'를 얘기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대중화시킨 스마트폰이 21세기의 시간 도둑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내고 있지만 부자들은 클릭 한 번으로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서 글로벌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음을 얘기하고서, 독자에게 되묻는다.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라면서 독자가 미처 답을 내놓기도 전에 작가는 더욱 선명한 주제를 부각시키며 스마트폰 관련 사례를 덧붙인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뉴욕에서 유행하는 '폰 스택(Phone Stack)' 게임을 소개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고급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할 때 모두의 휴대폰을 테이블 한가운데 쌓아놓고는 먼저 폰에 손을 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기에는 스마트폰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고 대화와 식사에 집중하자는 건전한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지만, 파워 게임의 면모도 있다.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에 무심할수록 더 힘이 강한 사람,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들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이, 지위가 낮은 이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부자나 권력자와 달리 사회적 약자는 '중요한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의 타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작가는 깊은 사유 끝에 나온 이야기를 스타벅스에서 커피 주문하듯 자연스럽게 흘리고 말지만 이로서 독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만지작거리며 '스마트폰의 가치'에 대해서 잠깐이나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영화 '신세계'에서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의 이항대립을, '건축학개론'에서 인간의 욕망을,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예술가의 고민을,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믿음의 환상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익숙하지만 낯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고개를 주억거리며 깊은 공감을 하게 되고 작가의 유려한 글 솜씨에 반해 절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것을 보고 무심히 지나친다. 어제와 같은 사람, 같은 사물, 같은 사회를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보고 낯설게 보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각도와 깊이를 조금은 달리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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