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원 교사는… 1963년생. 전북대 사범대 미술교육과 졸업. 1987년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지난 10여간 '사랑의 떡 나누기', '연탄 나르기', '김장 담그기' 등의 봉사활동과 '신화장학회' 결성. 2014년 대전시로부터 학생자원봉사활성화 표창 수상. |
말을 듣지도 못하는 한 학생을 맞게 된 것은 교사라는 운명 전체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남편을 설득해 남편 회사안에 장학회를 만들도록 한데 이어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신화장학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지도를 위해 자신의 생활은 오롯이 학생들에게 맞춰져 있다. 어느덧 교사 생활도 28년째에 들어선 대전용산고 김미원 교사를 만나 그만의 교육 철학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장애학생 만나며 교사로서 인생도 바뀌어=김미원 교사의 시간은 오롯이 학생들에 맞춰져 있다. “중학교 재직시절 귀가 안들리고 말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2주간이나 수업을 진행했죠. 나중에 다른 아이가 '얘는 못들어요'하는 거예요. 그동안 아이는 제 입모양을 보며 수업을 따라오고 있었죠.”
미안한 마음은 관심으로 바뀌었고, 어느날 그 아이에게 미술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마음으로 가르친 지도는 시교육청 미술대회에 데리고 나가 수상을 할 만큼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던 제자가 고등학교에 진학 후 보낸 편지에 적혀진 글은 '선생님 저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살면 될까요?'였다. 순간 가슴이 내려 앉았다.
“어려운 집안형편과 청각장애·언어장애를 가진 아이였으니 고등학교 들어가 진로를 고민하다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었어요.”
김 교사는 “아이의 아버지는 경비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형편이 안 좋은데 그림을 꼭 가르쳐야겠냐고요. 공장에서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고 말했다.
아이의 소질을 생각하니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교사로서 제자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김 교사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다.
“12월에 남편 회사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회사가 여기서 돈을 많이 버니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복지를 해야 하지 않냐고 말을 했죠.”
독일계 회사였던 남편의 직장은 김 교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김 교사는 제자에게 특수학교 미술선생님을 추천했다. 직접 미술학원을 찾아가 학원비를 깎아 달라 사정하기도 했다. 남편의 회사에서 나온 장학금도 지원됐다. 그 학생은 결국 공주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김 교사도 곧이어 마음이 맞는 동료교사와 장학회를 만들었다.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꿈을 가진 아이들에게 등록금과 병원비 등을 지원했다. '신화장학회'로 지금도 매년 지원 중이다. 김 교사는 이 제자를 기점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그림지도를 꾸준히 해왔다. 신탄진에는 미대 진학을 희망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다.
“한 번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어 '나도 학교를 어렵게 다녀서 새벽에 그림을 그렸다. 너도 열심히 하면 내가 조금씩 도와주마'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새벽 5시 반에 나와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기껏해야 등교 한 시간 전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 와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교사로서 그 학생을 그냥 넘기기에는 마음이 아팠다. 김 교사는 가족회의를 해 방과후부터 밤 10시까지 아이를 가르치기로 결정하게 된다.
“저녁은 가족들이 각자 차려 먹자. 이런 학생이 있어서 나는 이 아이를 도와줘야겠다고 약간의 협박(?)을 섞어 가족들의 동의를 구했죠.”
김 교사는 가정형편 때문에 미술학원을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는 물론 방학에도 무료로 미술 입시를 지도해왔다. 그동안 50명이 넘는 학생들을 미대에 진학시켰다.
▲봉사를 통한 배려 가르쳐=김 교사의 지도를 받는 아이 중에는 가정 폭력 등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김 교사가 4년 전 만든 용산고 '미르메 가족봉사단'도 그런 의미에서 출발했다. 김 교사는 '미르메 가족봉사단' 활동을 통해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김 교사는 그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바뀌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평소 아이를 때린다는 부모도 와서 김장봉사를 하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친해지는 계기가 되고요. 남을 도우는 봉사를 하며 가족간의 유대감도 느끼고 배려의 마음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어 김 교사는 입시에만 매달리던 아이들도 봉사를 계기로 배려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처음엔 봉사시간을 채우러 왔지만 직접 독거노인을 보살피고, 연탄나르기, 김장담기 등 봉사활동을 해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김 교사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 배려를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애들도 따라와요.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서로를 믿게 되죠. 학운들 사이에서도 친구의 작품을 칭찬할 수 있는 배려, 미술 용품을 사용한 뒤 다음사람을 생각하는 배려를 가르쳐요. 그러면 아이들도 저절로 배려심이 생기더라고요.”
김 교사는 아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이어가기까지 가족들의 희생도 컸다고 말했다. “딸도 미술을 했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같이 하기도 했었어요. 또 혼자 봉사하고 오면 설거지나 청소를 다 해줄 정도로 엄마를 이해하고요. 남편 역시 봉사활동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실어다줘요. 가족이 도와주고 희생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박고운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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