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리 계룡 엄사중 교사 |
살던 곳에서 학교까지 머나먼 길을 울며 또 울며 찾아간 첫 부임지는 서산 인지중학교. 내 인생 교직의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작디 작은 나를 비웃듯이 키가 훌쩍 큰 녀석들은 새내기 교사인 나를 킥킥거리며 바라보았고, 어쩔 줄 몰라 학생들에게 극존칭의 높임말을 써가며 절절 대던 나의 모습은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었다.
첫 학교 아이들과의 만남, 사랑, 추억들을 어찌 짧디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난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하는 물음에는 정답이 없는데 아이들은 나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하는 물음에는 정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아이들의 눈에서 나는 맑음을 보았고, 그 눈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교직의 길을 가고 있음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이제 21년차 교사인 나에게 옆자리 신규교사가 묻는다. “에이~ 선생님! 아이들이 그렇게 예쁘기만 하셨어요?” 어찌 아이들이 예쁘기만 했을까.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속에는 속상함, 갈등도 가득했다. 그러나 고민 많은 시간들 속에서도 아이들 눈 속에는 맑음이 있었다. 교사인 내가 맑은 눈으로 바라보아 주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찌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나는 도종환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찌 있으랴'는 시구를 가슴으로 느낀다. 온전히 아이들에게서 느낀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때론 흔들리면서, 때론 젖어가면서. 모든 것을 극복하며 꽃잎을 피우는. 너희들의 모습이 그렇다. 아이들을 지켜보며 함께하는 교사의 삶에 어찌 배움이 없을까. 나는 아이들에게서 늘 배운다. 그리고 내가 가는 이 길이 진정 행복하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출강을 하며 대학교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아니 미래의 교직후배, 동료교사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음악적 이론, 실기만을 강의하지 않는다. 교사의 길에서 오는 행복, 자긍심, 사명감을 말해준다. 교직의 길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모른 채 지나쳐 버릴까봐. 그리고 교직의 길을 함께 하는 제자들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 또한 내게는 감사와 행복이다.
어제는 바로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제자들이 먼 곳까지 찾아왔었다. 그 아이들이 작은 선물이라며 내손에 '애리쌤♥'이 새겨진 분필홀더를 쥐어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악! 어떡해! 칠판이 아니야, 화이트보드잖아!” 아마도 녀석들은 칠판을 생각했고, 분필가루 묻히지 말라고 마음을 썼던 모양이다. “샘! 우리가 늙었나 봐요. 세상에 학교가 너무 달라졌어요!”
오늘도 아이들은 내게 작은 선물이 아닌 너무도 큰 선물을 주고 갔다. 행복이 담긴 웃음과 미소를…. 아이들과 지내며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자주 해주지 못하는 말, 오늘은 용기 내어 수줍은 고백을 하고 싶다.
“얘들아! 너희와 함께하는 이 순간순간이 행복이다! 사랑한다!”
김애리 계룡 엄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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