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훈 대전선병원 문화이사, '감동' 음악 치유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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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훈 대전선병원 문화이사, '감동' 음악 치유사로

'국내 1호 문화이사' 환우들에 힘과 용기 주고파 15일 대전예당 앙상블홀서 연주회… “음악은 즐거워야죠”

  • 승인 2015-05-07 14:08
  • 신문게재 2015-05-08 16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선형훈 대전선병원 문화이사, 15일 대전예당 앙상블홀서 연주회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 '문화이사'가 있는 곳이 있다. 대전선병원의 선형훈(50·사진) 문화이사가 바로 그 주인공. 선병원은 전국 병원 최초로 문화이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병원이 문화시설도 아닌데 어째서 문화이사를 뒀는지 궁금증이 컸다. 선 문화이사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던 중 메일 알람이 울렸다. 선병원으로부터 보도 자료가 왔는데 선 문화이사가 오는 15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선 문화이사가 궁금했다. 찾아보니 그는 '신동' 소리를 듣던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이차크 펄만, 정경화 등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를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 교수의 마지막 제자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현재 문화이사가 된 사연에서부터 환자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의 기분, 치유로서의 음악에 대한 생각, 문화이사의 역할론 등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선 문화이사를 찾았다. “환우들을 위해 앞으로도 무대에 오르겠다”는 선 문화이사의 말은 거짓이 없어보였다. 그와의 진솔했던 1시간 30분여의 대화를 풀어본다.

-바이올린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바이올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

▲가족과 독일 여행 중 아버님(고 선호형 박사) 지인인 의사들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귀국하시고 나서 우리 형제들에게 악기를 시키셨다. 난 그때 5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 자의보단 타의에 의한 것인데 도중에 힘들지는 않았나.

▲처음에는 어린 나이였으니까 재미를 직접 느끼진 못했다. 그리고 하드하게 트레이닝을 받았다. 선생님이 집에 오셔서 2시간 정도 레슨을 해주셨다. 초등학교 때는 콩쿠르 준비로 바이올린을 곁에 두고 지냈다. 자연스레 공부와는 멀어졌고 바이올린의 세계에 계속 빠지게 된 것 같다.

-13살 때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때의 기분을 기억하나.

▲그 당시엔 우승을 했다는 기쁨, 그 순간이었다. 우승에 대한 기쁨으로 끝난 셈이다. 그러나 우승 이후 미국 유학에 대한 이야기가 부모님과 선생님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나왔다. 한국에선 더 배울 게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을 키워낸 갈라미언 교수님과 연결됐고 중학교 1학년 때 오디션을 거쳐 미국으로 떠났다.

-중학생이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말인데 고민은 없었나.

▲솔직히 반반이었다. 가족과 같이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오직 음악과 바이올린만을 바라보고 가야하는 건데 고민이 있긴 했다. 한편으로는 음악가로서 재미있는 인생이 될 수 있겠다는 호기심과 기대감도 있었다. 결국 마음을 굳혔고 해볼 때까지 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심 이후엔 '비행기를 잘못타면 어쩌지'와 같은 고민만을 했다(웃음).

-갈라미언 교수님의 첫 인상이 궁금하다.

▲처음 봤을 때 갈라미언 교수님이 젊은 나이가 아니셨는데 75세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를 키워낸 유명한 지도자, 교수이셨던 만큼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셨다. 그러나 그 당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매주 일주일에 한 번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을 수 있었고 여름캠프도 따라가 계속 사사를 받았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의 학교생활은 어떠했나.

▲바이올린에 너무 빠져있다 보니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공부보단 악기가 중요했으니 다른 과목은 패스할 정도로만 공부했다. 학교를 가도 머릿속에는 악기와 음악 생각만 했다. 한국에선 1~2시간 정도 하던 연습시간도 7~8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각오로 갔으니까. 한마디로 깡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조건 해야 이긴다는 정신력도 있었다.

-바이올린에 빠져있던 중 안타깝게도 갈라미언 교수님이 작고하신 것으로 안다.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갈라미언 교수님께서 그 해 12월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갈라미언 교수님의 조교 선생님께 레슨을 이어 받았지만 교수님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나 위엄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 조교선생님도 훌륭하신 분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해이해진 것 같다. 연습시간은 자연히 줄었고 연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선생님을 구해보던 중 레닌그라드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한 빅토르 리버만 교수님의 제자로 들어가게 됐다.

-갈라미언 교수와 리버만 교수의 레슨 스타일이 다르지는 않았나.

▲달라서 좀 고생을 했다. 갈라미언 교수님은 뭐랄까. 학생의 개성을 뜯어고치려 하지 않았다. 개성을 살려내면서 많은 동기를 부여해줬다. 물론 연습을 엄청 많이 하게끔 자극을 주기도 했는데 그것이 갈라미언 교수님의 가르침이었다. 약간 유머러스하시지만 연습량에선 엄격하셨다. 반대로 리버만 교수님은 너무 뜯어고치셔서 애를 먹었다. 그 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고쳐야만 했다. 당시엔 고생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갈라미언 교수님이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다양한 스타일을 느끼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말이다.

-오는 15일 공연얘기로 들어가 보자. 몇십년만의 단독콘서트인데 어떤가.

▲연주회를 공개적으로 한다. 연주가 좋으리라 예상은 된다. 스포츠는 승과 패, 기록이라는 뚜렷한 결과가 있지만 음악은 주관적이다. 관객 대부분의 기대치를 만족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좋은 연주로 관객들과 하나가 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연주가의 실력이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공연날 판가름이 날 것이다.

-음악과 연주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연주는 즐거워야 한다. 내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공연하는 동안 벌벌 떨어야 한다면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고통이다. 음악은 영화 한편을 보듯이 즐거워야 한다. 즐거움 속에서 내가 느끼는 음악을 전달해야 한다. 연주자가 느끼는 부분을 관객들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음악은 답이 없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안주하지 말고 많은 연주를 보고 느끼고,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게 정답이 아닐까.

-문화이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이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병원 중에 문화이사라는 직책을 운영하는 곳이 없는 것으로 안다. 나 자신의 음악생활보다도 환우들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병원 차원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고 아픈 환우들에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문화이사로서의 역할이다.

유학했을 때 알던 선후배들과 내년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다.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회를 준비하겠다.

-끝으로 음악이 과연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나.

▲절대적으로 그렇다. 전문 음악치료사는 아니지만 환자분들 앞에서 공연을 하다보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종 연구에서도 음악이 심리적 안정 등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환우들이 포기하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를 줄 수 있는 힘과 용기, 이런 것들을 좋은 음악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음악은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과 깊은 표현이 존재한다. 충분히 음악은 치유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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