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2. 노인은 외롭다
3. 늘어나는 황혼이혼
4. 멀어지는 친척
5. 결혼하기 힘든 사회
6. 전문가 의견
광복 70년 이후 우리 사회는 경제적 도약을 발판으로 물질적 풍요속에 선진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사회 이면에는 이혼율과 자살률 증가 등으로 가족공동체 해체 징후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발표한 '광복 70년, 삶의 질 변화와 시사점'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가족공동체 회복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앞으로 70년에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제시했다. 가족 공동체 붕괴는 강력범죄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이를 지켜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대의 과제임을 가정의 달에 되돌아 본다.<편집자 주>
오는 10월 전역 후 대학 복학을 앞둔 김형우(24·가명)씨는 알코올 중독 어머니와 가정을 보살피지 못한 아버지 사이에서 9살 때부터 대전의 한 청소년쉼터에서 지냈다.
어머니가 술을 잠시 멀리할 때 가정에 복귀했다가 다시 쉼터에 맡겨지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 김씨는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오토바이를 훔치다 잡혀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소위 문제아였다. 다행히 쉼터에서 방송통신고를 졸업하고 이미용사 자격을 취득해 관련 대학에서 꿈을 키우고 있지만, 가정해체의 어두운 터널을 어렵게 통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혼과 가정폭력, 방임처럼 가정이 해체되거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가장 큰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거나 폭력과 무관심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가출을 실행하거나 밤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헤매며 절도, 강도 등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정해체에서 겪는 어려움과 방황에 대해 사회는 여전히 개인적 문제로 여길 뿐 구조신호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가정해체, 청소년 범죄노출 내몰아=지난 해 대전 동구 휴대폰매장 2곳에 유리창을 깨고 침입한 10대 4명을 비롯해 유성지역에서 46차례 차량털이를 한 10대 2명 모두 가출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이었다.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한 결핍가정 청소년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가정해체가 모두 청소년 범죄로 이어지는 건 아니어도, 중요한 원인이자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청소년 강력범죄의 실태 및 특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일반 청소년 중 94%가 친부모와 생활하고 있지만, 소년 강력범 중 친부모와 생활한 경우는 64%로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분석했다. 또 소년 강력범의 경우 부모나 보호자의 감독으로 자유로운 시간이 평일과 주말 각각 12시간에서 13시간으로 다른 청소년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에서도 가정 역할과 청소년 범죄의 연결점을 찾았다.
지난해 대전·충남에서는 4900건의 청소년 범죄가 발생, 경찰이 입건했다. 이중 230여건은 강력사건이었다.
대전시 이동형 일시청소년쉼터 이계석 소장은 “거리에서 청소년들과 만나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가정 내에서 폭력과 방임, 경제적 빈곤 속에 있고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집에서나 나와서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다 보니 범죄 환경에 쉽게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집을 나와 거리에서 지내는 청소년들끼리 모여 다니며 숙식을 함께하는 가출팸은 가정해체의 단면이자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구조신호는 개인 일탈로 넘기기 일쑤=가정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들은 지금도 방황과 가출 등으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이들을 보살피거나 구조할 사회적 여건은 성숙하지 못했다. 청소년이 일으키는 범죄 등은 개인적 문제에서 비롯된 일탈쯤으로 여겨지거나 오히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과 부정적 관계가 형성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대전에서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본 청소년이 연 1만5000명 규모로 추정했으나, 이들에 대한 상담이나 보호 등의 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청소년이 머물거나 보호될 수 있는 쉼터가 대전과 충남에 각각 6곳으로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의 0.3%를 수용할 수 있을 뿐 청소년들을 안전하게 보호한다고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남미애 교수는 “가정 내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아이들이 청년이 됐을 때 복합적인 이유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청소년 문제를 아이들이 보내는 구조신호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인색해 가정과 사회에서도 충분한 보살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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