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유성구 한 아파트 화재 현장서 구조자를 구출하다 헬멧이 녹은 모습. |
불붙은 천장과 벽면만 보일 뿐 검은 연기가 가득 찬 거실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처럼 어두웠고, 베란다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10시께 발생한 대전 유성구 원내동 한 아파트 13층 화재 현장에서 남부소방서 김홍필(48) 구조팀장의 결정은 재빨리 이뤄졌다.
작은방 침대에서 시작된 불이 벽을 타고 거실까지 확산된 상황에서 베란다에 갇힌 사람을 구조하려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김 팀장은 산소호흡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연기 가득 찬 거실로 들어갔고, 이어 팀원 이우호(37)·이상덕(33)·최헌(33) 소방교가 앞사람의 발꿈치를 바라보며 불붙은 집의 거실을 거쳐 베란다까지 도착했다.
이우호 소방교는 “출동할 때부터 불이 난 아파트 13층 베란다에 거주자가 갇혔다는 것을 무전을 통해 알고 있었고, 사다리차나 굴절차를 기다릴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거주자 이모(80)씨는 화재 당시 불길이 현관을 막아 탈출하지 못해 베란다에 몸을 피했고 잠옷 차림 그대로였다. 구조대는 이씨 입에 산소호흡기를 대고 최헌 소방교가 안방에서 가져 온 이불에 물이 충분히 젖기를 잠시 기다렸다.
연기는 더욱 많아졌고, 붉은 불꽃도 천정과 벽면을 삼키며 베란다로 덮쳐오고 있었다. 당장 불붙은 거실을 뚫고 현관까지 탈출해야 하고, 젖은 이불은 이씨의 몸을 감싸 복사열로부터 지켜줄 터였다. 이불로 감싼 이씨를 앞뒤로 부축해 거실을 빠져나오는데 헬멧과 방화복 사이 목 뒷덜미에 뜨거운 입김이 닿는 것 같았다.
달궈진 다리미를 올려놓은 듯 팔꿈치도 뜨겁게 달아올라 평소 화재현장에 느끼던 열기를 뛰어 넘었다. 결국, 이씨는 손등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채 구조될 수 있었고, 촛불 부주의로 시작된 화재는 내부 115㎡와 위층까지 일부 피해를 내고 40분 만에 진화됐다.
구조를 마치고 남부소방서에 복귀해서야 구조대는 헬멧과 방화복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헬멧 정수리와 눈 보호대는 열기에 녹아 부풀거나 휘어졌고, 등에 멘 산소통에 인식표도 모두 탔으며, 화재진압대 임권섭 대원은 목과 귀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김홍필 팀장은 “사람이 갇혀 있어 일단 구조해야 한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는데 화재 열기가 매우 거세 위험할 수 있었으나, 대원들이 재빨리 움직여 안전하게 구조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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