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성지순례단(지도신부 김정수 바르나바 내동성당 주임신부)은 지난 4월13일부터 18일까지 5박6일간 일본 후쿠오카와 시모고토, 가미고토, 운젠, 나가사키 등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신앙의 유산을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에 본지는 순례의 길을 따라가며 이뤄진 가톨릭 역사탐방 성지순례 동행 취재기를 순차별로 지면에 담아본다. <편집자 주>
▶순례 일정
대전을 비롯한 서울, 의정부, 수원, 안동, 제주 등 전국에서 모인 한국가톨릭성지순례단원 60명은 순례 제1일인 지난 4월13일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 1시간20분만에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순례단은 이튿날 벳부에서 가마토 지옥과 유노하나를 들러 유후인으로 이동, 민예촌 거리와 긴린코를 둘러보고 구마모토로 이동해 구마모토항에서 시마바라항으로 향했다.
순례단은 시마바라 성당에서 김정수 신부 주례로 미사를 올린 후 사흘째인 15일 운젠에서 나가사키로 이동해 콜베 신부의 성모의 기사 기념관과 혼고우치 루루도, 오우라 천주당을 순례했다. 이후 26성인 순교지와 기념관을 순례 후 26성인 기념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고,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가 됐던 글로바엔을 둘러봤다.
제4일째인 16일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과 일본의 이태석 신부라 할 수 있는 나가사키 명예시민 제1호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여기당을 둘러본 후 나가사키항으로 이동해 제트호에 탑승, 시모고토로 이동해 후쿠에항에 도착했다. 순례단은 후쿠에 성당에서 미사를 올린 후 도자키 성당과 기리시탄 자료관, 미즈노우라 성당, 이모우치우라 성당, 루루도 견학 후 4일째 일정을 마무리했다.
제5일째인 17일에는 해상택시에 탑승해 기리시탄 동굴 성당을 순례 후 가미고토에 도착해 와카마츠 오우라 성당과 나가노우라 성당, 오소 성당을 순례하고 아오사카우라 성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이후 다이노우라 성당과 카시라가시마 성당을 순례 후 성지순례 일정을 마무리하고 제6일째인 18일 나라오항에서 제트호에 탑승해 나가사키항을 거쳐 후쿠오카 국제공항으로 이동,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가고시마에 상륙한 이후 일본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1562년 오무라 영주인 오무라 스미타다는 무역을 위해 토레스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아 일본 첫 기리시탄(크리스천) 영주가 됐다. 1587년 기독교 세력을 감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무라 영주 스미타다가 사망한 후 선교사 추방령을 발령했고, 1597년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26명의 선교사와 일본인 신자들이 처형되면서 이 곳은 일본 기독교의 본거지가 됐다. 지금도 나가사키현에는 26인 성인을 기리는 순교지가 기념관으로 남아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 금교령을 공포하자 일본 각지의 신자들이 순교로 목숨을 잃었다. 1637년 3만7000명이 살해당한 시마바라와 아마쿠사의 난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포르투갈인의 내항을 금지하고 쇄국체제를 확립해 매우 엄격히 기리시탄을 단속했다.
1865년 숨어살던 기리스탄 한 명이 오우라 천주당에 찾아가 주임신부인 프티장 신부를 만나 신자임을 고백하는데 이것이 일본 기독교 역사상 기적이라고 불리는 '신자 발견'이다. 250년 동안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금교령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사제와의 만남은 '우라카미 4번째 박해'로 이어졌다. 메이지 정부의 기리시탄 박해가 여러 나라에 전해지면서 각 나라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일본 정부는 1873년 마침내 금교령 팻말을 철거하고, 신자들은 부활의 고백으로 자신들의 마을에 성당을 헌당했다. 잠복시대를 인내하며 지켜온 신앙은 지금도 나가사키 땅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고토=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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