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서는 1934년 충무공 후손 이민복과 대전에 거주했던 서장석에 의해 발간됐다.
그동안 전서는 오탈자가 많고 일본의 침략구절에서 임의로 가감이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가치가 폄하돼 왔다.
27일 대전시 문화재종무과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1795년(정조 19) 처음 간행된 전서와 이때의 전서를 면밀히 대조하고 교정한 결과 그동안 알려진 오탈자가 아니라 일제의 출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삭제된 글자를 초서 등으로 숨기는 방법 등을 통해 발간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양 학예연구사는 이어 “이민복과 서장석은 전서를 1930년에 발간하려고 했지만 일제가 간행을 저지할 목적으로 전서의 주요 문구를 삭제하는 등 검열과 노골적인 방해로 간행되지 못했다”며 “4년 뒤인 1934년에 내용을 더욱 보완하고 일제의 처분 내용을 반영하는 것처럼 하여 간행했다”고 말했다.
양 학예연구사는 일제의 '왜추와 왜적을 삭제하라'는 처분에 편집자들은 왜추(倭酋)에서 '추(酋)'자와 왜적(倭賊)에서'적(賊)'자를 삭제하되 삭제된 글자 바로 앞 글자를 행서(行書)나 초서(草書)로 표기해 이들 글자가 생략된 사실을 독자가 읽는 중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일본 소장본에서 발견한 注意(주의)'라고 적힌 별지(別紙)에서도 확인됐다.
양 학예연구사는 “민족의 어려운 시기에 전서를 펴낸 이 분들은 일제의 온갖 방해 공작과 고난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사명감으로 끝내 전서를 발간했다”며 “일제의 검열로 삭제된 글자와 보충 교정한 글자를 복원해 처음 이 분들이 간행하고자 했던 전서를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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