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대전예술의전당 제5대 관장으로 취임한 오병권 신임 관장의 대전예술의전당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1984년부터 5년간 서울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관으로 활동했고, 1989년부터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기획실장과 공연기획 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오 관장은 문화예술행정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그가 새로 수장을 맡은 대전예당에 냉혹한 평가를 했으니 대전예당 직원들은 물론 지역 문화계에선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오 관장은 대전예당의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오 관장은 “대전 시민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서비스와 공연을 제공하는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또 “대전예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장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대전예술의전당 관장실에서 오 관장을 만나 앞으로 대전예당의 운영 방향과 미래에 대한 비전, 그의 철학 등을 들어봤다.
-대전예술의전당 5대 관장으로 취임하셨는데 포부를 말씀해달라.
▲대전예술의전당이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연장도 아니고 최고의 공연이 열리는 곳도 아니다. 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운영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공연하고,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돕는다면 최고의 공연장이 될 수 있다. 대전예당에 오면 청중과 아티스트가 대우받을 수 있고, 좋은 공연이 넘쳐나는 곳으로 만들겠다.
-대전예당 운영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둘 부문은 무엇인가.
▲소통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관료화다. 대부분의 관료 사회는 자기 업무를 방어하기 위해 규정을 따지고 자기 벽을 치는 경향이 있다. 소통을 통해 내 옆 사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같이 돕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옆의 팀이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도울 수 있도록 하고 팀별 이기주의를 없애겠다.
-2년이라는 관장 임기를 놓고 너무 짧다고 하는 의견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올바른 지적이다. 예당 관장 임기는 2년인데 1년은 전임 관장이 기획해놓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남은 1년 동안 뭘 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연임 가능성을 떠나서 직원들에게 고기를 직접 잡아주지 않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기획에서부터 음악공연을 판단하는 법까지 소통의 장을 만들어 평생동안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하겠다. 이를 위해 우선 기획자들에게 필요한 음악강좌를 시작하려고 한다. 연주자를 보고 판단하는 법이라던가 앙상블을 위한 조건들, 좋은 연주의 기준 등에 대해 일정이 잡히는대로 바로 시작할 예정이다.
-대전예당의 법인화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각이 많다.
▲대전예당의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의 고용 불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최선을 다해 일하기에는 신분 불안의 문제가 있다. 법인화가 답일까에 대해선 고민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법인화를 반대하기도 한다. 반대 의견도 소중한 법이다. 반대의견을 잘 청취하고 만약 (법인화가)가야할 길이라면 잘 설득할 것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법인화하는데 앞장서셨는데 그때 이야기를 들려 달라.
▲서울시에서 시향 평가가 너무 나쁘다고 했다. 시향에 노조가 생긴 것은 급여나 복지 등의 부분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지나치게 연습 일정을 관여하게 되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연습 일정을 관여하기 시작하면 편해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훈련은 정확히 책임지는 사람에게 맡기고, 노조는 급여와 노동 조건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당시 서울시향이 너무 추락했다는 사실에는 다들 인지를 하고 있었다. 나이 많은 고참 단원들에겐 후배들에게 정말 떳떳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리면서 한 분 한 분 일일이 설득했다. 최고의 교향악단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투표 결과 6대 4로 가결돼 법인화가 결정됐다. 이후 서울시향은 수직 상승했다.
-서울시향 법인화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 때 법인화를 진행하면서 그 많던 머리숱이 다 빠졌다(웃음). 오디션을 진행하고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등 여러 노력들을 했다. 사실 그때 나간 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이 분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최대한 도움을 드리려 애썼다. 이런 일들을 진행할 때 그만두게 된 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그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전지역 예술인들과는 친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최규남 성형외과 원장님 부부와 그분들의 딸인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친하다. 그녀와 미국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비 쫄딱 맞으면서 같이 건넌 경험도 있다. 오랫동안 음악해설을 하다 보니 친분이 있는 지역 대학 교수님들도 많다. 후배들이 대전에 교수로 와 있는 경우도 있다. 사실 대전에 자주 온 편이다. 서울에서 지방 출장 다닌 중에 대전이 가장 많다. 대전에 오게 돼서 기쁘다.
-오 관장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장로님으로 알고 있다.
▲교회 성가대 지휘만 35년이다. 서울 동교동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를 다니고 있다. KTX가 있으니 주일이면 성가대 지휘를 위해 주일예배에 참석하려고 생각 중이다. 신앙인이니까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은 직장생활하면서 타인과의 대인관계에 많은 도움을 준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관용을 갖게 해준다.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저를 다스리고 연마하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데 큰 힘이 된다.
-대전에 내려오실때 산악자전거를 제일 먼저 챙기셨다고 들었다. 철인 3종 대회 같은 종목에도 도전해봤는지.
▲제가 산악자전거 타기를 즐겨서 체력이 좀 뒷받침되는 편이다(웃음). 예전에는 미시령 고개를 쉬지 않고 넘어갈 정도였다. 대전으로 내려올 때 산악자전거를 보물 1호로 가져왔다. 탁구도 좀 치는데, 운동을 뭐든지 다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다(하하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런 취미들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지금까지 잘 버틸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철인 3종 경기는 안해봤다. 마라톤과 자전거는 자신있지만 수영이 문제다. 수영을 제대로 못해봐서 자신이 없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구리헤엄밖에 못한다(웃음).
-자전거 말고 다른 취미도 있나.
▲취미도 다양한 편이다. 무엇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사실 기계 만지기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를 잘 다루곤 했다. 오토바이 타는 것도 좋아한다. 한창 탈 때는 정비를 직접 했다. 기본적인 정비나 부품 교체 등은 문제가 없을 정도다. 취미는 아니지만 자동차 운전을 잘한다. 무사고 30년이 넘었다. 외국 연주자들이 연주를 위해 한국을 찾을 때 직접 픽업하러 나갔다. 초청자가 직접 자기 차로 나와 연주자를 모시는 셈이니 연주자는 굉장히 고마워한다. 공항에서 연주장까지 연주자를 모시는 그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빨리 친해질 수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
▲우리 딸이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군대 간 아들은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집사람이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비결은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데 있다. 가족은 내 삶의 원동력이자 소중함 그 자체다.
-목소리가 매우 좋으신데 성악을 해본 적이 있으신지.
▲노래방에서 힘 좀 쓰지만(웃음) 성악은 안했다. 사실 음악을 늦게 시작했다. 중학교 때 바이올린을 하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자신의 재능을 찾아서 발굴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난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음악에 빠져들었고,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다. 중고품 가게에서 오디오 재생기를 사다가 집에 있는 전축과 연결해 클래식 음악을 듣곤 했다.
-클래식 음악 해설위원 등으로 라디오 방송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목소리가 좋아서 클래식 음악 해설위원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처음에는 해설자를 쓸 예산이 없어 내가 원고도 쓰고 해설도 직접 하게 된 것이었다. 해설을 시작했더니 글을 쓴 사람이 직접 해설을 한 덕분인지 전달이 더 자연스럽게 됐다. 반응이 좋아서 오랫동안 꾸준히 하게 됐다.
-현장에서 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언제까지 뛰고 싶은가.
▲그렇다. 나는 현장에서 뛰고 싶다. 서울시향에서 퇴직 후 1년 정도 휴식을 취하다가 대전예당에 곧바로 지원했다. 65세까지는 직장생활을 하고, 이후에는 해외 선교활동을 하려고 한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오케스트라를 만들 생각이다. 인도나 동남아 등에는 신통한 음악대학이 없다. 이들 나라에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주는게 내 소망이다. 음악을 통한 선교사 역할을 하는게 내 미래의 꿈이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해주신다면.
▲대전예술의전당 출신 직원들이 전국의 대표적인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책임운영자로 진출하도록 이들의 역량을 키워주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대전예술의전당이 우리나라 공연장을 선도하는 최고의 연주회장이 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열정과 노력을 대전 시민들도 알아주시고 깊은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오병권 관장은=1955년 8월 4일 서울 출생
1971~1974년 배재고등학교 졸업
1974~1982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학사 졸업
1989~199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정책 석사 수료
1982~1983년 한성중학교 음악교사
1984~1989년 서울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관
1989~2005년 서울시립교향악단 기획실장
2005~2014년 (재)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자문역 역임
1999~2014년 KBS 및 MBC 라디오 클래식음악 해설위원으로 활동
2011년 대구가톨릭 대학교 산학 협력교수
1998~2015년 현재 한국 공연예술 경영인협회 감사
대담=한성일 취재 3부장(부국장)
정리=송익준 기자 ·사진제공=대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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