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스티븐 코바체비치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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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스티븐 코바체비치 내한공연

연륜이 뿜어내는 음악적 여유… 역시 거장

  • 승인 2015-04-16 14:56
  • 신문게재 2015-04-17 16면
  •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음악평론가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음악평론가
▲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음악평론가
▲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음악평론가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체비치는 지난 7일 대전예술의전당 거장시리즈의 첫 연주자로 등장해 인간미 넘치면서도 기량이 출중한 거장의 풍모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레퍼토리는 베토벤 바가텔(Op.126)과 후기 피아노 소나타 31번, 슈베르트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1번이었다.

바가텔은 본디 서정적 특징을 지닌 가벼운 작품을 뜻하는데, 베토벤 바가텔은 규모는 작지만 베토벤 후기의 역량이 음악적으로 집대성된 걸작으로 꼽힌다. 코바체비치는 매우 섬세하게 손가락을 놀리고 페달을 풍부히 사용하면서 여유있게 음악을 끌고 나갔다. 시종일관 콧소리를 내면서 선율을 흥얼거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때로는 강렬한 섬광을 뿜어내는 놀라운 테크닉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어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형식은 소타나의 틀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 낭만적인 정서가 가득한 환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3악장은 대위법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거대한 푸가형식으로 베토벤의 심오한 내면의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낭만적 기운과 맞물려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정서적 감흥이 강렬하다.

슈베르트의 소나타 21번 역시 고전적 형식 안에서 서정적인 노래와 낭만적 화성이 정교하게 결합한 슈베르트 최후의 걸작 소나타로 알려져 있다. 가곡의 왕이라는 슈베르트의 애칭에 걸맞게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노래하는 선율은 아름답고 흥겨운 정서로 드러난다.

코바체비치가 보여준 베토벤과 슈베르트 소나타는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일 때 마치 가벼운 바람에 꽃잎이 나는 듯 섬세했고 음색은 따뜻했다. 때로는 폭풍이 휘몰아치듯이 격렬했지만 리듬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소나타에 내재된 노래는 손끝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아울러 소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은 절로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75세 노장의 손놀림은 전성기 때의 날렵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젊은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깔끔한 연주스타일과는 다른 과도한 페달사용과 잘못 짚은 음정으로 소위 말하는 완벽한 테크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엽적인 실수가 연주 전체의 음악적 흐름을 깨는 일은 결코 없었다. 관객들이 거장의 음악적 여유이자 연륜으로 익은 달콤한 열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바체비치는 무대에서 음악을 스스럼없이 즐기고 관객들에게도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었던 연주자였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한없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기교가 완벽한 연주자라도 스스로 음악이 선사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면 전문연주자는 될지언정 거장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코바체비치는 그런 면에서 진정 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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