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봄날, 추억을 부르는 예산읍내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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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봄날, 추억을 부르는 예산읍내 5일장

사고 파는 흥정 속, 인심이 한가득… 튀밥과 뽕짝 메들리·국밥의 정취 오래된 기억 부르기에 손색 없어 사람이 그리울 때 절로 찾게 될 곳

  • 승인 2015-04-16 14:03
  • 신문게재 2015-04-17 14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주말여행]예산읍내 5일장

“이건 얼마씩이랴?” “사실라구?” “집에다 심으면 갈이(가을)까지 펴서 좋아. 꽃이 월매나 이쁘다구.” “나는 장미도 이쁜디? 저거 하나 사가까?” 팬지, 장미, 매발톱, 카네이션 등 거리에 나온 온갖 꽃들 앞에서 할머니 두분이 꽃타령이 한창이다. 한 할머니가 주인에게 팬지꽃의 가격을 묻는다. “하나에 천원인데 두 개 사시면 1500원에 드릴게유.” 할머니는 팬지 화분 두 개 사고 다른 할머니는 장미 하나 사들고 발길을 돌린다.

바로 옆에선 두 아주머니가 트럭에서 즉석에서 썰어 파는 해산물을 먹으며 얘기꽃을 피운다. 뭘 그렇게 드시냐고 묻자 “멍게여, 멍게. 한번 먹어봐”라며 내입에 넣어준다. 오도독 씹히며 짠 바다내음이 확 밀려온다. 종이컵에 소주까지 따라주며 멍게를 연신 내입에 넣어준다. 한 아주머니가 옆의 일행을 가리키며 “얘는 내가 아는 동생인디 장 설때마다 종종 서울서 놀려오곤 혀”라며 술잔을 부딪친다. 멍게장수도 아침부터 멍게가 잘 팔려서 기분이 좋은지 한마디 거든다. “이쁜 아줌니들인께 내가 멍게 까주는 겨.”

사고파는 흥정 속에 시골 장날 인심이 묻어나는 이곳은 예산 5일장이다. 5, 10일에 열리는 예산읍내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외지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예산장은 추억 속 장터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아침에 집앞 비탈에서 뜯어옴직한 머위며 쑥, 씀바귀가 소쿠리에 소복히 담겨있다. 호박고지도 있고 깐 마늘, 부추, 오갈피순, 산나물도 한자리 차지했다. 작년에 수확한 방콩, 팥, 옥수수도 나왔다. 그야말로 시골에서 나는 먹거리들이 다 나왔다.

보이는대로 다 사고싶어 조바심이 날 정도다. “이 머위 사가, 많이 주께. 씀바귀 삶어서 무쳐먹어 봐유. 쑥은 워뗘?” 소매를 잡아끄는 할머니의 옹이 진 손을 뿌리칠수가 없어 사다보니 한 보따리가 됐다. 길 건너편 간판에 필름이라 써 있길래 가서 물어보니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거란다. 주인인 우제윤(78)할아버지에게 예산장이 꽤 크다고 했더니 손사래친다. “개갈 안나유. 인구가 18만에서 8만으로 줄었는디유.” 당진이 고향으로 50년째 예산에서 살고 있단다. 같은 종씨라고 하자 반가워하며 커피 한잔 하라며 붙든다. 대리점 하셔서 돈 좀 버셨냐니까 “좀 벌었쥬. 내가 삼부자유. 아들 둘이니께”라고 농담까지 하며 껄껄 웃는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난장이 펼쳐졌다. 장꾼들의 외침과 '뽕짝 메들리'가 흥을 돋우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빨간 딸기 향이 십리 밖까지 퍼지고 알록달록한 사탕은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가방과 온갖 옷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상추, 고추모가 싱싱함을 뽐낸다. 쌀과 채소들도 첩첩이 쌓여 있다. 한 쪽에선 어물전도 열렸다. “꼭꼬고오”. 어디서 우렁찬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와! 동물농장이 따로 없다. 흰둥이 검둥이 두렁 강아지가 눈이 마주치자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내민다. 새끼오리, 토끼, 고양이도 있고 무뚝뚝한 염소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특히 수탉 한 마리가 가관이다. 붉은 벼슬과 떡 벌어진 가슴팍이 '나는 수컷이다'라고 뽐내며 허세부리는 '깍두기'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부리부리한 눈매로 쉴새없이 울어대는 게 역시 수탉다웠다. 옆에선 연신 펑펑 튀밥 튀기는 소리가 장터를 울린다. 말린 흰떡, 옥수수, 쌀이 담긴 깡통이 온 순서대로 놓여 있다. 순서가 뒤바뀌었다며 할머니들이 서로 눈 흘기며 실랑이 하다 금세 풀어진다.

시장에서 옷장사한 지 3년 됐다는 김종수씨(64·사진). 고덕에 방 얻어놓고 살며 예산, 홍성, 덕산, 고덕장을 돈단다. 서울서 직장다니다 그만두고 장돌뱅이가 됐다는 김종수씨는 노력한 만큼 벌게 되더라며 이 생활이 좋다고 했다. “자유가 있다는 게 참 좋아.” 자유, 얼마만에 되뇌어보는 말인가. 누구나 꿈꾸는 삶의 방식이 있지만 난 아직도 노마드적 삶을 열망한다. 몇 년전, 어릴 적 꿈이 원양어선 타는 거였다고 후배한테 얘기했더니 재밌어했던 적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예산장에서 그 유명하다던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식당 밖에까지 테이블을 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얼큰한 국물에 고슬고슬한 밥을 말아 먹는 맛이 그 순간은 누구도 부럽지가 않았다. 묵은 총각김치가 무르지 않고 아삭해 두 접시를 비웠다.

도회지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시장 구경을 가곤 했다. 어릴적 엄마손 붙잡고 장에 갔던 추억도 있고, 치열하게 사는 시장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기 위해서일게다. 결국 인정이 그리워질 때마다 발길이 저절로 그곳으로 가게 된 것 같다. 살구꽃, 복사꽃이 앞다퉈 피고지는 4월의 예산 오일장으로의 나들이. 오래된 추억을 호명하기에 손색이 없다.

▲가는길=버스는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하루 8번 간다. 승용차는 고속도로.국도가 있는데 1시간 30분 걸린다. 가능하면 국도이용이 좋다.

▲먹거리=소머리국밥이 단연 으뜸이다. 읍내장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메뉴. 4000원.

글·사진=우난순 기자 woo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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