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교육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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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교육은 삶이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 승인 2015-04-15 14:46
  • 신문게재 2015-04-16 18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오래 전에 어느 학부모가 면담을 청해왔다. 아이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아예 학교를 그만두려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의 부모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아이를 졸업시키려 했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미리 치밀하게 짜놓고 그 과정을 어떻게든 지키려 하였지만, 아이는 더 이상 그런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학업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치료가 더욱 시급해 보였다.

그 아이가 그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학부모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릇된 교육관 탓이 크다. 그 학생도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부모의 '지도'대로 잘 따라주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고3이 되고 성적이 부모가 원하는 만큼 오르지 않으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학부모에게 고등학교는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일 뿐, 아이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성적만이 중요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르지 않자 자식을 마구 다그치기 시작했고, 그것이 결국 모든 걸 망쳐놓은 것이었다.

부모는 대학입시까지 몇 달만 더 참으면 된다고 판단하고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마구 '채찍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설마 지금까지 잘 해 오던 아이가 그 몇 달 만에 그토록 무너질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가 거기까지 간 것만도 크게 양보를 한 것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거의 포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에 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인생에서 그 동안의 세월은 공백일 뿐이었다. 그는 성적을 올리는 것 말고는 한 인격체로서의 성장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능력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 못하고 지낸 세월이 적잖이 길다. 그는 이미 절름발이의 말과 같은 상태에 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부모는 그 힘겹게 달리고 있는 말에 채찍을 가한 셈이었다. 공부 하나에만 매달리는데도 그토록 벅찼기에 그의 인생에 달리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이 있을 리 없다. 누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 그동안의 그의 인생은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공백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삶은 대학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활은 고등학교에서 못다 이룬 것을 만회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일 뿐, 여전히 진정한 의미의 삶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고교과정 보다도 1년이나 더 긴 절망의 세월이었다. 이제는 죽어버리든지 반항하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한계시점에 다다랐다.

흔히 우리는 학교 다니는 기간을 단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 과정은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된지 오래이다. 요즘은 대학도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존 듀이가 지적하고 있듯이, 교육은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배움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 인격이 성장하는 삶 그 자체여야 한다.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닐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교육이 하나의 삶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한 준비일 뿐일 때 그 기간은 그저 버려진 시간이요 공백이다. 어느 단계든 삶은 그 나름대로의 다양한 요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때 비로소 그 삶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성적이라고 하는 한 가지 요구 때문에 모든 다른 것을 포기한 삶에 의미가 있을 리 없고,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힘겹고 지겨운 것은 없을 것이다.

지친 말에 채찍을 가한다고 해서 잘 갈 수는 없다. 하물며 절름발이가 된 말을 다그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 하랴. 옛말에 노마십가(駑馬十駕)란 말이 있다. 절름발이 말이 정상적인 말보다 열 배를 더 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픈 다리를 달래가며 천천히 갈 때만 그렇다. 교육에는 어느 정도의 채찍질도 필요하지만 그것도 말의 상태를 봐가며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교육은 경주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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