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순태 서천 서면초 교감 |
우리들의 희망이고, 미래며 국가의 당간지주들인 생떼같은 우리 아이들을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슬픔과 분노가 우리를 짓눌렀으며, 살아있다는 미안함에 자괴감까지 들었던가?
어언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과연 남은 자들의 의무와 책임이 무엇이며, 이 사건과 관련 있는 자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자신들의 허물을 인정하면서 기존의 여러 부조리한 사태들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부실들을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들을 얼마만큼 보여 주었는가를 묻고 싶다.
관피아니, 해피아니, 이런 저런 피아를 들먹이며, 기존의 시스템이나 제도를 개선해야 하겠다며, 곧 뼈를 깎는 듯한 자기 반성과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하는 모습들을 연출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그때의 의지(?)와 이성(?)들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대부분의 국민들은 부정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본래의 모습이라면, 무엇에 어디에 우리 아이들이 꿈과 희망과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갈 것인가?
집권자는 많은 데 집정자가 없으며, 사람은 많은데 지도자(리더)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본래의 政은 正(바름)을 잡(又)는다는 회의 문자이다. 바름(正)이란 정직과 진리라는 말이다. 정치는 탐관이나 엽관도 아니요, 자신의 영광이나 영달을 위함도 아니다. 국민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국가의 안위와 발전을 위하며, 민주를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국회에서 청문회를 간간이 연다. 나는 지금까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법적으로 자유스러운 분(?)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국민도 국가도 안중에는 없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불나방이 불빛만 보고 돌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문제는 명확해졌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선배님들이 제대로 된 교육의 길로 안내하고 가르침에 실패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즉 교육의 본질을 실천하지도 못하고 추구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과잉경쟁 논리에 매몰된 교육현실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되어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있다. 경쟁은 필요하겠지만 경쟁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점령해버리는 비참한 상황에 이제 더 이상 우리교육을 내 맡겨서는 안 되겠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인간답게 살고 봉사'하는 가치관이 아니다. 학원뿐만 아니라 학교도 물질지향적인 카테고리에 종속되어 있기에 '사람됨'을 가르칠 여력이 없다.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가치관에 막혀 '사람 됨'을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다. 물질만능을 추구하는 데 역량을 발휘한다면 참교육은 멀고도 험하다. PISA가 발표한 성적을 보면 언제나 우리 학생들의 성적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학생들이 학교수업에 막대한 중압감을 받는다는 것과 학업흥미도가 OECD국가 중에서 거의 후미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즐거움과 기쁨이 없는 곳에 무슨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진다면 과연 그 사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학생들의 행복한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학교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 혁신의 주역이 바로 40만 우리 교사들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학교는 경쟁하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장소'라는 의식의 대변혁과 그에 따른 실천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지금 당장!
석순태 서천 서면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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