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 |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고향이 없이 도시에서 떠돌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들어 쓰러지면 중환자실로, 그 다음은 요양병원으로 전전하다가 장기간 사회 및 가족과 단절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웰다잉에 대해 전혀 준비하지 못하였거나, 설사 본인이 이렇게 죽는 것은 아니다 하고 생각을 하였어도 반영되지 못하는 사이 허전하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다. 여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우리 사회가 웰다잉에 대해 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웰다잉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는 웰다잉을 맞이할 수 있을까? 우선 웰다잉에 대해 각종 공적기관, 사회교육기관, 노인회관, 요양원, 주민센터 등에서 웰다잉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또한, 웰다잉을 실행할 수 있는 사회적 조직이 많아져야 한다. 요즘 생기고 있는 장례지원단이라는 마을기업도 좋은 예다. 여기에서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 지원단에 소속된 작가들은 당사자의 생애에 대해 구술을 통해 생애이야기를 만든다. 또한 사후의 제반 절차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반영한다. 그렇게 하여 장례는 당사자에 대한 추모와 추억의 장이 되도록 한다.
당사자가 이러한 웰다잉 결정을 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대부분이 가족과 친지 그리고 병원이다. 버킷리스트라는 영화에서도 두 주인공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죽도록 만드는 가장 큰 적은 바로 가족과 문병객 그리고 의료진이라고 못 박고 있다. 영화에서 지칭하는 웰다잉의 적들은 각자의 마음 편함이나 합리화를 위해 무조건 병원이나 요양원에 머물러 있을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병원에 갇혀서 그대로 죽기보다는 살아생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확산되어 가족과 병원이 당사자의 의사에 합의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당사자의 웰다잉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말기암으로 고생하시던 나의 아버님은 끝내 수술을 받지 않는 쪽을 택하셨다. 나는 함께 지내면서 당신의 일생에 대해 구술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아버님의 다른 모습도 생애기에 담을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원고를 읽어드리면서 잘못된 곳은 바로 잡았다. 물론 사후 장례절차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 49재를 맞이하면서 아버님이 남기신 글 그리고 자녀들과 숙부님, 아버님 친지들의 추모의 글을 모아서 '나의 아버지 정당 이병하'라는 책으로 출간을 했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 하신 말씀은 “동규야 이젠 가야겠다”는 한마디였다. 혈육간 영원히 헤어진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이었지만 아버님은 그래도 당신의 의지에 따라 당당하게 죽음과 마주하신 것이다.
나는 아버님을 찾아가기 쉬운 대전 근교에 모셨다. 또 계룡에 살고 있는 내 친구는 돌아가신 부모의 묘를 아예 집안 뜰에 모셨다. 그리고 생전에 좋아하시는 꽃을 심어 아름답게 피우고 있다. 웰다잉을 통해 인간 존엄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웰다잉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준비를 해야 한다.
이동규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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