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아 그림 그리는, 화가 이목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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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아 그림 그리는, 화가 이목일을 만나다

“붓 잡을 수밖에 없었죠, 그림이 내인생 전부였으니깐…” 뇌경색, 작품으로 이겨내… 갤러리 봄 30일까지 전시

  • 승인 2015-04-09 14:37
  • 신문게재 2015-04-10 16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 대청호변의 갤러리 봄에서 만난 이목일 화가.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 점 한 점 자세히 설명하는 이 화백의 모습에서 수십년 내공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 대청호변의 갤러리 봄에서 만난 이목일 화가.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 점 한 점 자세히 설명하는 이 화백의 모습에서 수십년 내공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영혼을 팔아 그림을 그린다는 한 화가가 있다.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는 그 영혼을 팔아 그림을 그린다니 솔직히 허세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영혼을 팔아 창작을 한다는 화가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레 커져 갔다. 영혼을 판다는 것.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자신을 죽음이라는 암흑에 던지면서까지 그림을 하겠다는 열정과 자부심, 고집스러운 신념 등이 느껴졌다. '안되겠다,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이 선 순간, 이미 화가가 있다는 갤러리 봄(대전시 대덕구 대청로 149)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갤러리에 도착하자 영혼을 팔아 그림을 그린다는 이목일(64) 화백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화백에게 인사를 건넸다. 검은 중절모를 쓰고 깔끔한 회색 정장 재킷을 입은 이 화백은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왼손과 왼다리가 불편해보였다. 그렇다. 4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아직 병마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화백은 인터뷰 내내 실내에서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병의 후유증으로 실내에서도 빛을 보면 눈이 부신 탓이라고 했다.

뇌경색이라는 '사슬'에 묶인 몸, 그럼에도 자유로운 영혼의 붓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이 화백. 그의 마음의 진실을 쫓기 위해 의심 가득한 질문공세를 쏟아냈지만 돌아온 답은 너무나 깨끗하고 진실했다. “내가 죽음으로서 죽어있는 모든 작품들의 영혼으로 돌아가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이 화백. 그와의 진실했던 2시간여 동안의 대화를 풀어본다. (이 화백은 경남 함양 출신으로 걸쭉한 경남 사투리로 답했다)

-솔직히 몸이 불편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나.

▲ 백두산 호랑이 기운
▲ 백두산 호랑이 기운
▲51년생으로 지금 64살인데 4년 전인 환갑 때 쓰러졌다. 그 당시에도 그림에 몰두하던 중 새벽에 갑자기 쓰러졌다. 도와줄 사람도, 봐줄 사람도 없었다. 솔직히 힘들었다. 몇 번이고 13층 집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음을 만나볼 생각도 했었다. 겁이나 죽음을 만나지는 못했다.

-지금도 한 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데 작품 활동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그림 그릴 때 왼손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미치겠더라. 보조해주는 사람도 없고 답답했다. 그런데 닥쳐온 역경이랄까 시련을, 그림으로 이겨냈다. 그림이 내 인생의 전부였으니까. 쓰러진 뒤에도 그림은 내 옆에 있었다. 영감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인지 작품을 하루 만에 완성할 때도 있다. 몸은 불편해 졌지만 영혼을 자유로워졌다.

-오히려 쓰러진 게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쓰러진 후 작품의 영역은 확장됐고 영감은 깊어졌다. 사색과 고민보단 붓이 가는대로 몸과 정신이 따라간다. 영혼이 자유로워진 셈이다. 또 오감이 발달했다. 사실 몸이 이렇게 되고나서 할 일이 없다. 이 몸으로 어딜 돌아다니길 하겠노, 사람을 만나겠노. 작품 활동하며 내 자신과 노는 거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리기도 하고 붓이 없으면 성냥개비나 이쑤시개, 칫솔로도 그린다. 기품과 테크닉이 더 많이 발달했다고나 할까. 하루에 2~3점씩 그리고 있다.

-가족들은 없나. 가족사가 궁금하다.

▲독신이다. 혼자 살아왔다. 물론 이별의 아픔도 겪어봤다. 딸이 하나 있다. 바빠서 만나지 못했었는데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국립재활원에 입원했을 때 봤다. 너무 반가워 펑펑 울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생명과 가족의 귀중함. 이후 그림도 바뀌었다. 새를 그려도 2마리가 함께, 짝지어있는 그림을 그리게 되더라.

-이제 작품이야기를 하고 싶다. 30일까지인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이 주로 소품인데 몸이 불편해 큰 작품은 그리지 않는 건가.

▲ 여름-산책
▲ 여름-산책
▲아니다. 50호부터 100호, 300호까지 큰 작품들도 많다. 다만 큰 작품은 운반해오기가 힘들어 작은 작품들 위주로 가져온 것뿐이다. 비록 한 손밖에 제대로 쓰지 못하지만 운전도 하고 다한다. 차에 공간이 부족해 큰 그림은 가지고 오지 못했다. 섭섭해 하지 말아 달라. 큰 작품들도 보고 싶다면 6월 24일부터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오면 된다.

-이목일. 나무 목자와 해 일자를 쓰는 것으로 아는데 본명인가.

▲본명은 이상욱이다. 이름이 너무 흔하다는 생각에 젊은 시절, 목일로 바꿨다. 목일은 나무와 해다. 나무는 해가 있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풀면 광합성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생각이다. 그림에도 관계가 있다. 내 주위엔 사람이 무척 많다. 전국적으로 깔려있다. 사람하고 만나 교류하는 것도 좋아한다. 쓰러지고 나니까 사람들과 연락도 끊기고 했지만 지금 모습으로 사귄 사람도 많다.

-호랑이 그림이 돋보인다. 호랑이를 그리게 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호랑이만 1만 마리 그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 화가라고도 부른다. 꿈에 호랑이가 나와 선몽을 해줬다. 이후 호랑이 그림을 미친 듯이 그렸다. 선만 그려도 호랑이었고 먹으로 그리니 호랑이도 변하더라. 오죽했으면 호랑이 울음도 그렸겠는가. '어흥'하는 그 울음을 그림으로도 표현해봤다. 신기하게도 내 호랑이 그림을 사간 정치인들은 대부분 당선이 됐다. 오비이락인 것 같기도 하지만…(웃음).

-대전에서 첫 전시회를 갖는데, 대전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혹시 대전과 관련한 작품을 그려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대전역을 그려보고 싶다. 예전 고향에서 서울 올라갈 때 항상 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전역에서 내렸는데 풍경이 좋더라. 한번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대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내 스타일로 그리면 되니까 상관없다. 역이라는 곳이 재미있는 곳이 아닌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섞이는 곳이니까.

-단답형 질문이다.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대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면, 조건에 응하겠는가.

▲아니다. 그림을 선택한다. 쓰러진 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망했다. 회복이 된 후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바로 옆에 화장실도 기어가야하고 다리는 시도 때도 없이 떨렸다. 그런 생활을 할 바엔 죽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림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다 보니 안정적이고 차분해지더라. 내가, 그럼, 이걸 안했으면 뭐 했을까 싶다. 그림에 대한 묘한 중독감이 느껴진다. 사실 그림은 화가가 죽어야 된다. 내가 죽으면 죽음과 동시에 내 영혼이 그림에 묻힐 거다. 그러면 죽어있던 그림은 숨을 시작한다. 그림은 내 인생의 전부다. 당연히 그림을 선택한다.

●이목일 화가는 누구인가

1951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다. 중앙대 예술대 회화과와 일본 창형미술학교를 졸업한 이 화백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도 수학했다. 그동안 30번의 개인전을 했고 2003년 3월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내 필드갤러리에서 호랑이만마리 개인 초대전을 열은 바 있다. 벤쿠버 코벤갤러리에서도 초대전을 가졌다. 현재 고향인 함양으로 내려가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엔 수필 집필에도 뛰어들었다. 10일 그의 삶을 되돌아본 자서전적 에세이, '늘 빛나는 인생은 없다'는 책을 낸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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