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가수원초 교장·동화작가 |
아침 인사를 건네며 줄줄이 등교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쳐대는 이 사랑 고백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운 인사말이었지만 삼 년째 방송조회, 각종 학교행사의 첫인사와 끝인사로 써먹었더니 지금은 입술에 차지게 붙는다. 삼월 입학식 날은 일학년 앞에서 두 팔을 올려 어둔한 애교 몸짓까지 표현해서 학부모들과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도심의 변두리 학구에서 문제 행동을 표출하는 아이들의 가정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한부모가정과 조손가정, 친척집 위탁이나 재혼가정, 새벽 혹은 저녁 출근으로 부모 얼굴도 보기 힘든 가정, 부모가 마음병을 앓는 가정 등 다양한 사연을 접하면서 측은지심으로 시작된 이 인사말에 내 스스로 의미를 크게 부여해 보았다. '사랑한다는 이 인사말 나눔이 오늘 마음이 허전한 어떤 아이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훗날 이 어린 날을 추억하며 새로운 삶의 동력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동안 이 절실한 바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이다. 물론 교실에서 선생님들의 측면 도움으로 그 효과가 금세 나타나고 있겠지만 말이다. 늘 입이 부어서 지각을 하던 유명한 말썽쟁이가 어느 날인가 사과 한 알을 건네주더니 웃으면서 일찍 등교하게 되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눈이 마주친 6학년 남학생은 수업 중에도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한다고 속삭여 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저학년 꼬마들은 그 고물고물한 손가락의 촉감으로 내 허리를 먼저 감싸며 사랑을 고백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덕분에 지역사회에서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란 입소문까지 얻었으니 천성이 무뚝뚝하던 내게 이 인사말의 효력은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야, 아침에 뭘 먹고 그렇게 뛰는 거야? ○○야아!”
야생마처럼 긴 다리를 겅중대며 달려오는 아이를 향해서는 큰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이 또한 평소 정서 불안으로 담임의 걱정을 많이 듣는 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에 이름이라도 친근하게 불러 주어서 감성의 울림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세요?”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던 야간경비원이 진지하게 물어서 내가 자주 부르는 이름은 대부분 사연이 많은 아이들이라고 대답하였더니 눈치 빠른 그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각 학교 관리자 연수에서 현재 정신과 의사라는 강사 왈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학생들을 향해 오늘 공부하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라는 사소한 말붙임이 청소년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힘이 된다며 인간 존중의 사회를 강조하였다. 평소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아름다운 칭찬이 자라는 청소년의 충동적인 외로움을 견디게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말에서 평소 감정 표현에 인색한 우리 어른들의 무거운 자화상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흔히 말하는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에서 이웃들과 마주쳤을 때의 내 표정은 어떠한가. 가장 사랑한다는 내 가족을 향한 언어 사용은 어떠한가. 나 역시 먼저 입을 열면 헤프게 보일까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사랑합니다!”
오늘 웃으며 건네는 이 한 마디로 누군가가 아직 드러내지 못한 내면의 아픔을 달래주어서 크고 작은 학교폭력이 예방되고, 더불어 소외받는 아이들의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신통한 언어의 묘약이겠는가. 더욱이 늦은 나이에 애용하게 된 이 짧은 인사말로 인하여 오히려 내가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이 행복감을 널리널리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정희 가수원초 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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