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문화평론가 |
올해는 이런저런 핑계로 못 갈 형편이라 도리 없이 지난해 경험을 추억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한 번이라도 가본 분은 알겠지만 축제 현장에서 펼쳐지는 거짓말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전시, 퍼포먼스 장면들은 일 년 내내 가슴속에 싱싱하게 살아 있다. 슬며시 입가에 웃음꼬리가 쳐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혼자 길을 걸으며 낄낄거리다 다른 이들의 밉지 않은 눈길을 받은 적도 여러 차례. 거짓말 축제에 대한 기억은 자칫 처지는 삶의 어깨에 이렇게 푸른 샘물을 쏟아붓는다.
두루 알려진 희대의 거짓말도 축제 현장에서 다시 만나면 새삼스러울 수밖에. 바로 미국의 '허풍 박물관'(Museum of Hoaxes)이 선정했다는 역대 만우절 10대 거짓말. 이상기온으로 나무에 스파게티가 열렸다며 그 가닥을 뽑아내는 농부들의 모습을 내보낸 영국의 BBC 방송(1957년), 시속 270km 강속구 투수를 영입한다는 프로야구단 뉴욕 메츠의 발표를 알린 미국의 한 스포츠지(1985년), 흑백 TV 브라운관에 나일론 스타킹을 씌우면 컬러가 된다는 방송기술자의 주장을 보도한 스웨덴의 한 방송사(1962년), 원주율을 성경에 쓰인 대로 3.0으로 변경하기로 했다는 앨라배마 주 정부의 방침을 전한 미국의 한 잡지(1998년)가 그 몇몇 주인공들.
축제장 출입구 좌우로는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을 동화 '양 치는 소년'과 '피노키오'의 이야기 동산이 제법 잘 꾸며져 있었고, 두 소년의 코스프레는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아무리 악의 없는 거짓말, 장난스런 거짓말이라도 버릇처럼 자꾸 하게 되면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고전적인 교훈의 동화지만, 푸른 한라산과 바다 사이의 축제장에서 만나니 어른들도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 듯 재미가 그만이었다.
축제장 여기저기에는 거짓말 노래들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지금도 자주 흥얼거리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부터 이따금 라디오에서 들리는 조항조의 '거짓말', 지난해 젊은이들의 큰 인기를 끈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생각해보니 거짓말 노래들은 거의 다 사랑이 주제이다. 피식, 바람 같은 웃음이 샜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작은 극장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러나 꼭 봐야 할 한국 영화로 곧잘 뽑히는 '거짓말'이 돌아가고 있었고, 드라마 '거짓말' 중 몇 장면과 영화 '하얀 거짓말'이 이어질 것이라는 자막도 보였다. 그리고 필자를 헛헛하게 웃긴 것은 다음과 같은 안내문.
“올해 축제에서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제목에 '거짓말'이 들어간 작품들만 골라 상영합니다. 내용에 포함된 것들까지 다 튼다면 우리 축제는 분명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십시오.”
축제를 어서 끝내야 함을 이해하라는 뜻인지, 거짓말을 일삼는 너와 나의 실체를, 아니면 거짓말로 범벅이 된 우리 삶을 서로 이해하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축제의 대미는 거짓말 경연대회. 지역별 예선을 통과하고 제주 본선에까지 진출한 팔도의 거짓말쟁이들은 열 댓 명. 거짓말인 줄 뻔히 알고 듣는데도 구경꾼들은 죄 박장대소에 눈물 콧물 훔치다 얼이 다 빠질 노릇. 게다가 첫 번째 심사 기준이 '진실성'이라나 뭐라나? 내 원 참!
그래선지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이 무대에 올라 열 장도 넘는 주민등록등본과 커다란 가족사진부터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 젖히는데. 글쎄 7대가 한 집에 산다는 거였다. 자신은 37살 된 할머니로서 아들이 20살, 손녀가 돌쟁이, 그리고 아버지가 60세, 할아버지가 78세, 증조할아버지가 98세, 고조할머니가 119세라고 하였다. 찰진 전라도 사투리로 7대 가족들의 공중파 방송 출연 녹화 테이프도 가지고 나왔다는 그 천연덕스런 '진실성'에 어찌 웃음이 안 터지랴. 일등은 떼어 놓은 당상.
한데 말입니다. 이런 거짓말 축제, 진짜 어디 없나요?
박상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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