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대전교육연수원 연수부장 |
귀 기울여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새삼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놀랍다. 초목은 초목대로 자연의 섭리에 따라 꽃과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벌과 나비 같은 곤충도 그들만의 독자적 세계가 있고 자연에 순응하며 그들만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우리 인간도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인간의 삶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계절을 잊고 사는 것 같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과중한 학업과 일에 치여 지내고 있다. 학업과 일에는 계절이 없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출퇴근 때 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각박해진 인간관계에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농촌 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는 겨울철이면 농한기라 해서 비교적 여유 있는 시기가 있었지만, 농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일 년 내내 농사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래야 먹고 살고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다. 이렇게 바쁜 나날을 힘들게 지내다 보니 햇빛이 얼마나 따사로워졌는지, 매화 꽃망울이 얼마나 부풀었는지 느낄 여유도 없이 봄을 맞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여행과 닮았다고 말한다. 이 여행에서 어떤 사람은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달려 나간다. 이렇게 쉬지 않고 달려가면 잠깐의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두 발로 천천히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 여행을 한다. 그 여정에서 길가에 피어있는 꽃에게 눈길도 주고 손을 흔드는 나무에게 인사말을 건네기도 한다.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바라보며 이마를 스치는 바람결을 느껴보기도 한다. 이런 여행이야 말로 인생 그 자체를 즐기면서 알찬 삶을 살아가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퇴근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에 사는 초등학생을 만났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피곤해 보이는 아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아이는 학교 공부가 끝난 다음 방과 후 교실과 학원 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 놀아야할 시기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어른들이야 먹고 사는 일과 자녀 교육에 목이 매여 있으니 힘들어도 바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 하자. 그렇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규칙과 질서가 왜 필요한지를 스스로 깨달아가야 한다. 아울러 어울림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일의 소중함도 알아가야 한다. 배움만을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며 자연과 함께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책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삶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더라도 가끔은 주변을 돌아보며 느린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지는 달, 뜨거운 여름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과 겨울을 포근하게 감싸는 하얀 눈을 느껴 보자. 밝은 달빛 아래서 매화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우수수 낙엽 질 때 귀뚜라미 소리에 어린 시절 옛 친구를 그리워해보는 것도 좋겠다.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눈여겨보는 여유가 있는 삶이면 좋겠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으로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하자.
이성구 대전교육연수원 연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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