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대전으로 유학 온 필자를 기다려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이 깜깜하기만 했었던 교정에서 이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린 채 딸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 온 시절과 아이들이 살아나갈 앞날이 겹쳐 만감이 교차한다.
때마침 밝은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딸을 발견하고 '오늘도 무사 했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돌덩이 같은 책가방부터 먼저 건네받아 어깨에 메어 본다. '공부하기 힘이 든다'는 딸의 말을 듣게 되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딸의 삶의 무게도 함께 느껴진다. 하지만 필자에게 딸과 함께 하는 단 둘만의 시간은 행복하기만 하다.
지금 언론에서는 매년 세 자릿수에 육박하는 청소년 자살을 줄이기 위해 학생의 스마트폰에서 '자살'과 관련된 단어를 사용하는 등 자살징후가 보이면 부모에게 전달하는 알림서비스와 학교나 아파트, 공공주택 옥상에 자동개폐장치와 같은 안전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혹여 우리 아이가 공부하다 말고 교실을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되어 스마트폰을 쳐다봐야만 하고,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라도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속에서 생활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저마다 우리 아이만큼은 최고로 키워야 한다는 부모들의 바람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경쟁 속으로 내몰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좋은 대책들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이나 묘안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훌륭한 법과 좋은 제도를 앞세우고, 잔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우리 아이들의 두 어깨를 다독여 주고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가정과 학교 측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한 것 같다.
이석범·금산경찰서 봉황지구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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