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권 목원대 총장 |
객지에서 혼자 살다보면 이전엔 부모형제와 의논해서 해결하던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도 그만큼 많아진다. 어미를 떠난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부모를 떠나 있어도 아주 떠나는 법이 없다. 비록 어떤 문제를 함께 의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모형제는 언제나 돌아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요 최후의 보루다. 그런 믿음이 있는 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좋은 친구도 있다면 금상첨화다. 부모형제도 있고 든든한 친구가 있으면 이 세상에서 해결 못할 문제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친구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어서가 아니라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존재다. 학교 폭력으로 발생하는 아동·청소년의 자살 생각이 친한 친구가 5명 늘 때마다 10%씩 줄어들 수 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할 때 사회란 바로 이러한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익명의 거대한 집합체로서의 사회란 어려움에 처한 나의 개인적인 처지를 알기도 어렵거니와 언제든 달려와 나의 고민을 자신의 것인 양 보듬어주는 그런 살가운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은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며, 더 나아가서 더 큰 사회도 건강하게 하는 든든한 토대가 된다.
마사 스타우트라고 하는 정신과 의사는 옆집에 사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이란 책에서 미국 전체 인구 중 약 4%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인 대장암의 발병비율이 전체인구의 0.4%인 것에 비하면 이는 엄청난 비율이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들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비행에 비춰볼 때 미국인들은 수많은 시한폭탄을 곁에 둔 채 살고 있는 셈이다.
스타우트는 그의 책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도 함께 밝히고 있는데, 그들의 30%내지 50%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유전적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인과 미국인이 별로 다를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미국과는 달리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 비율이 현저하게 낮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스타우트는 미국에 유독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의 비율이 높은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린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때로는 자립심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인간적인 정이 아주 메말라버린 것처럼 냉랭해 보일 때도 있다. 끔찍한 일을 당해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걸 당장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소위 '비빌 언덕'이 미국 사회에는 그만큼 없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들이 벌이는 끔찍한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양심이 없고 뉘우침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아무런 애정이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발생비율이 낮았던 것은 가족이라고 하는 유대관계가 돈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도 이 유대관계가 점점 느슨해져 가고 있다.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느슨해질 때 그걸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학교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학교는 가정보다도 더 큰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미래에 대한 꿈과 포부를 위해 준비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든든한 친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공부뿐만 아니라 친구들 때문에라도 가고 싶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 새봄을 맞이하여 모든 학교가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봄 날씨처럼 포근한, 안식처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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