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학생이 즐겁고 학교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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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학생이 즐겁고 학교는 행복하다

류동훈 청양 수정초 교장

  • 승인 2015-03-17 14:08
  • 신문게재 2015-03-18 18면
  • 류동훈 청양 수정초 교장류동훈 청양 수정초 교장
▲류동훈 청양 수정초 교장
▲류동훈 청양 수정초 교장
청양과 공주를 잇는 국도변에 한 학교가 있다. 운동장을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으로 단장한 학교다. 방음벽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스케이트와 팝송을 즐기는 학교.”

출장으로, 개인사로, 이 길을 숱하게 지났지만 이 학교를 눈여겨보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길가의 학교에 눈을 돌린 순간, 발견한 것이다. 즐거움과 행복을.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그가 교장으로 근무할 적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여기에 부임한지 반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러운 학교를 위해 매일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게 된다.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사철 푸르고, 그 주위를 두른 붉은 우레탄 트랙 위로 중간놀이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인라인스케이트를 손에 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보호구를 착용한 아이들이 재잘대며 서로 짝을 지어 인라인 타는 법을 가르치고 또 배운다. 1학년이고 6학년이고 가리지 않고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1학년들은 입학하자마자 인라인스케이트를 하나씩 선물 받는다. 학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엔 학생들의 인라인스케이트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물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은 으레 선생님들을 찾아온다. “선생님, 저희 노래 불러도 돼요?” 노래를 그냥 부르면 되지 왜 허락까지 받는 것일까?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영어교실 문을 열면 의문이 풀린다. 영어교실 한편에 자리 잡은 노래방 기기. 선생님이 노래방 기기의 전원을 켜 주면 아이들은 즐겁게 영어 노래를 부른다. 교장실에 앉아있으면 은은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겨울왕국의 주제곡 'Let It Go'는 아직까지도 사랑받는다.

스케이트 못지않게 영어 노래도 아이들에게서 열띤 호응을 이끌어낸다. 영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영어라고 하면 움츠러들기부터 하던 아이들이 자신감 넘치게, 즐겁게 영어로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은 노래방 기기의 영향이 컸다. 화면에 가사가 나오니 겁내지 않고 노래하다보면 어느새 가사를 보지 않고도 영어로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영어 노래가 겁나지 않으니 자연히 영어도 겁나지 않는다. 교내 영어 노래 콘테스트에서의 열창이나 학습발표회에서의 장장 15분에 달하는 영어 뮤지컬 공연은 실로 감동이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공자의 말이다. 이 말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이 스케이트와 팝송을 즐기지 않았더라면 나와 선생님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처럼 열띤 호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즐기는 것. 공부를 즐기고 체험을 즐기고 학교생활을 즐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4학년도 한 해 동안 10회 이상 체험학습을 실시하고 교육가족이 함께 하는 쿠킹클래스를 열고 스키캠프를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다. 매년 줄어들기만 해 온 신입생을 확보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도 체험학습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그 결과 올해 신입생은 8명으로 작년보다 다섯 명이나 늘었다. 전교생의 40%가 1학년이다.

3월 첫 중간놀이 시간에는 1학년 신입생들과 작년 말에 전학 온 학생들이 처음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었다. 헬멧을 고쳐쓰며 5학년 민지가 말한다. “정말 좋아요. 더 일찍 전학 올 걸 그랬어요.”

오늘은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4학년 정우가 묻는다. “교장선생님, 올해도 1박 2일 체험학습 가요?” 이 벅차오는 마음을 무엇으로 전해야 할지.

전교생 33명의 작은 학교, 그러나 행복은 크기와 상관없다는 걸 새삼 느끼는 하루하루. 여기 행복 교육은 나 역시도 행복하게 한다.

류동훈 청양 수정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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